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감격의 경제적 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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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제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걱정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분위기를 깨기 쉽다. 덩달아 감격하고 기뻐하기 전에 경제적 계산을 해 보는 버릇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감격스러운 베르사유 강화조약을 맺을 때 경제학자 존 M 케인스는 많은 걱정을 했다. 당시 전승국들은 다시는 독일이 전쟁을 못 일으키게 묶어 놓았다고 감격하고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영국 재무부 대표로 참석했던 케인스는 강화조약을 경제적으로 계산해 본 결과 독일과 유럽의 장래가 결코 평온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 조건에선 독일의 자력갱생이 불가능해 평화가 오래가기 어렵고 잘못하면 또 한번의 전쟁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불행히도 케인스의 걱정은 적중했다.

이번 6자회담의 결과를 두고 경축 분위기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자주 외교의 쾌거"에서부터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민족의 앞날과 평화를 선택했다는 의미"에 이르기까지 감격이 넘치고 넘친다. 물론 핵 위기를 봉합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좋은 무드를 깨는 것 같아 매우 주저되지만 그렇다고 경제적 계산을 빼놓을 수는 없다. 좋은 일일수록 경제적 계산이 맞아야 한다. 지금의 기쁨을 확실히 하고 오래가도록 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6자회담의 성공은 공동성명 발표보다 경제적 뒷받침에 크게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벌써 공동성명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나오고 있는데 이 이견들은 대부분 돈으로 메워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의 계산이 얼마나 나올지, 그중 한국 몫이 얼마나 될지는 앞으로 협의해 봐야 하겠지만 여러 흐름으로 볼 때 우리가 큰 몫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 몫으로 정해진 200만kw의 송전 비용만 해도 약 8조원에 이르고 여기에 경수로 등 에너지 지원비용을 합치면 최대 11조원 운운하고 있다.

한반도가 평온하려면 지금 빈사상태에 있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틔워 자력갱생의 실마리를 찾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기 위해선 천문학적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돈 쓸 데는 많은데 세금이 안 걷혀 적자 재정이 계속되고 있고 나랏빚도 많다.

6자회담의 지원 비용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화합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해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온 국민이 비상한 각오로 고생하며 아껴 모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한국 경제에 주름살을 지워서는 곤란하다. 한국 경제가 튼튼하게 자라야 북한을 도와줄 수 있지 않은가. 그 부담 때문에 남북 경제가 동반 추락해선 게도 구럭도 놓치는 꼴이 된다.

우리의 경제력이나 예산 규모로 볼 때 6자회담의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힘들기는 해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여러 비능률과 낭비를 없앤다는 전제 아래서다. 지금과 같이 예산이 새는 것을 그대로 둔 채 또 인기 끄는 정책을 다 하면서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덜 급한 사업은 대폭 줄이고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옛날 방위세를 걷듯이 국민에게 목적을 확실히 밝히고 동의를 구해 투명하게 걷는 것이 정도(正道)일 것이다.

과거 정부 주도로 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율곡(栗谷)사업으로 자주국방계획을 추진할 때도 비상한 방법으로 돈을 마련했다. 이번은 과거보다 규모나 경제적 비중이 훨씬 크다. 비장한 각오와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비장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디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하루빨리 감격과 흥분에서 벗어나 비용 조달의 로드맵을 만들고 실천 계획을 짜야 할 것이다.

우선 국민 설득에 빨리 나서야 한다. 먼저 국민에게 세금이든 전기요금이든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알려야 한다. 그것은 앞으로 언젠가 닥칠 통일비용 분담에 대한 좋은 학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모든 국민이 6자회담의 계산서를 분담할 때 이번 회담을 통해 통 크게 굴고 큰 박수 받은 분, 앞장서서 감격하고 유도한 분들은 보통사람들보다 돈을 훨씬 많이 내어 솔선수범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을 것이다.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