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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단체 내세워 재판에 도전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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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최종영 대법원장이 23일 퇴임식을 마친 뒤 대법원 청사를 떠나기 전 직원들과 악수하다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이고 있다.[김태성 기자]

"여론이나 단체의 이름을 내세워 재판의 권위에 도전하고 이를 폄하하려는 행동은 참으로 유감스러웠다."(퇴임사 중)

'은둔의 대법원장'이란 별칭을 가졌던 최종영 대법원장은 6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법원 사람들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웠던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임기를 하루 앞둔 2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퇴임사 직후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 일반 직원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였다. 38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감한 최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우리 사회는)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정당한 법 절차와 사법적 판단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당한 사법 절차 이외의 방법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왜곡된 의식구조는 법과 판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며 결국 법치주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를 두고 재임기간 중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려고 대외 활동과 튀는 발언을 삼갔던 최 대법원장이 떠날 때가 돼서야 속에 담아 둔 말을 한 것 같다고 판사들은 해석했다.

최 대법원장은 법관들에게 "스스로 부당한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거나 자의적.주관적 가치관에 갇혀 사법권 독립을 해치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최 대법원장은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변호사 개업 등 사회활동을 검토할 계획이다.

최 대법원장은 재임기간 중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집무실에서 혼자 점심을 들었다. 대외 행사 참여도 극히 드물었다. 그는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1999년 대법원장 취임 후 고향인 강원도의 환영회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사가 귓속말로 민원을 부탁하는 것을 듣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절실히 느낀 것이 계기였다"는 것이다. 그는 2003년 10월 대법원 산하에 사법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공판중심주의, 참.배심제 도입, 법조 일원화 등을 추진했다.

김종문기자 <jmoo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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