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싶은이야기<3668>제79화육사졸업생들<121>김창룡의 육사입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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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창룡이 이리로 박기병대위를 찾아갔을때 3연대장은 김백일소령이었고 행정장교는 김종오대위였다.
마침 3연대가 신병을 모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대위는 김창룡을 이리 연대에 다시 입대시켰다.
김창룡이 배치된 곳은 연대정보과였다.
그때 정보과장은 오일균대위였다.
김창룡은 오일균의 밑에 있으면서 그가 좌익정보를 깔아뭉개려 하는것을 눈치채고 그의 뒷조사를 시작했다.
결국 오일균은 신변을 생각하여 자리를 옮겨갔다.
그가 간곳은 육군사관학교였다.
김창룡은 3연대에서 정보하사관으로 열심히 일했다.
연대장이하 모든장교들의 신임도 받았다.
그래서 육사3기생 모집때는 부산5연대에서와는 달리 연대장의 추천을 쉽게받아 응시 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육사에 문제가 있었다.
구술시험장에 들어섰더니 오일균대위가 시험관으로 앉아있었다.
좌익킬러가 되려고 결심한 김창룡에게 쫓져온 좌익장교 오일균은 까다로운문제를 계속 던졌다.
김창룡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잘 받아내 다음 방으로 옮겨갔다.
그곳은 육사입시의 마지막 관문이었는데 거기엔 백남권대위가 버티고 앉아있었다.
백대위는 5연대에서 김창룡의 중대장겸 연대부관으로 있으면서 김창룡의 과거를 잘 알고 있었고 그때문에 2기생 응시를 못하게한 장본인인 것이다.
김창룡은 중대장에게 말도 않고 도망하듯 탈영하여 있다가 다시 그앞에 나타난 것이다.
백대위는 이때 통위부 인사국장으로 와있으면서 3기생모집 시험위원장이 되어있었다.
김창룡은 백대위와 눈이 마주치자순간 멈칫 했으나 곧 자세를 가다듬어 큰소리로 관등성명을 밝힌 다음『중대장님, 잘못했습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하고 빌며 애원했다.
『야. 김창룡! 이 괘씸한 놈 어떻게 된거야!』
『예. 3연대에 가있다가 연대장님 추천으로 응시했읍니다』하면서 그간의 얘기를 상세히 말했다.
『그래, 네가 장교가 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너는 하사관으 로충분할텐데』
『국가위해 더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입니다, 중대장님』
백대위로서도 착잡한 심정이었다.
5연대때는 예비시험인데다 첫번째니까 그렇다쳐도 이제는 당락의 마지막 단계인데다 두번이나 계속 남의앞길을 막아야할 입장에 이른 것이다.
일본대를 다니다 학병으로 끌려나가 일군소위로 해방을 맞은 백남권대위는 장교라면 적어도 구제중학졸업자이상이라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김창룡을 대했을때 그는 지휘관의 정이 발동하여 중대장시절로 돌아가고 있었고 김창룡은 그저 충직하고 씩씩한 많은 중대원의 한 사람으로보였다.
그래서 결심을 내렸다.
『좋아! 합격이다.』
그리고는 합격판정 스탬프를 「쾅」하고 찍어 주었다.
이래서 김창룡은 그렇게도 꿈꾸어온 국군장교 후보생이 된것이다.
김창용은 3기생으로 육사에 입교해서도 공산당을 잡겠다는 집념을 잠시도 버린적이 없었다.
내무반에서,식당에서,훈련장에서 그는 항상 누가 좌익이고 누가 우익인가를 가려내는데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과거의 상관이고 지금은 육사의 구대장으로 와있는 오일균대위와 그의 주변을 맴도는 김지회·홍정석·문상길·김남근등 후보생들이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였다.
한편 김창룡의 대부격이 된 박기병대위가 그때 육사에 가서 보수교육을 받게됐다.
기성장교에 대한 재교육과정이었다.
이 보수교육과정이 끝날무렵 육사와 같은 영내에 있던 1연대의 이성가연대장이 박대위에게 만나자는 전갈을 보냈다.
박기병대위가 찾아갔더니 이성가소령은『연대안의 빨갱이를 모두 잡아내야겠는데 교육이 끝나면 나와같이 일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대위의 꿈은 중대장 대대장·연대장을 거쳐 지위관계통으로 진출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사양하고는 다른 사람을 추천했다.
『그렇다면 유능한 적임자가 있읍니다.이번 3기생으로 졸업한 김창룡을 써주십시오. 수사능력이 대단할 뿐 아니라 공산당을 분쇄하겠다는 결의가 확고한 후보생입니다』
이래서 이성가소령이 김창룡을 데려다 정보보좌관으로 앉히고 정보소대를 만들게 한것이다.
김창룡이 용산역에서 박기병소위를 만날때만 해도 그는 당시 5백만명에 이르던 초라한 월남피난민의 한사람에 불과했었다.
단신으로 전선을 넘어 서울에 왔으나 몸을 기탁할만한 곳을 못찾아 가마니를 들고 다니며 사람 많은 곳에 깔고 앉아 혹시 아는사람이라도 지나가지 않나하고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그런 신세였다.
그러던 어느날 박기병소위를 만나 이제는 그의 소원대로 국군의 장교가 되어 공산당잡는일을 전담하게 된 것이다.
용이 날개를 단듯 그후 그는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남천의 처가에서 부인과 헤어져 혼자 월남하면서『나는 서울가서 공산당 때려잡는 일을 맡을테니 그런 기관에 찾아와 나를 찾도록하라』 고 말했다고 한다.
부인 도여인은 2년남짓 늦게 월남하여 그런 방식으로 남편과 상봉했다.
도여인은 지금 브라질로 이민 가 살고있다고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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