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녹색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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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 총선거가 끝나고 1주일 뒤 라인강변의 국회의사당에 아무렇게나 스웨터를 걸쳐 입은 청바지차림의 젊은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들어섰다. 그녀는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의사당입구 계단을 올라 현관 안의 복도에 세워놓으려다 수위에게 제지당했다.
알고 본 즉 27세의 이 젊은 여성은 녹색당 소속으로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님이었다. 처음으로 의사당을 구경하러 왔다가 자전거를 밖에 세워두면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현관 안으로 끌고 들어 왔다는 얘기였다.
기성질서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런 면모를 갖고 있는 녹색당 사람들은 핵무기를 반대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기술개발과 기업의 경영합리화는 실업자를 대량으로 쏟아내니까 안되고, 환경을 파괴하는 대단위 산업시설은 규모를 줄여야하고, 군대는 오히려 전쟁위험만 높이고 자원 낭비를 가져오니까 국방예산을 다른데 써야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의원의 임기가 4년이지만 녹색당 의원들은 모두가 2년만 채우고 사임하겠다고 한다. 나머지 2년은 비례대표후보의 다음 순번 동료들에게 넘겨줘 임무교대를 한다는 것이다. 또 새로 의원이 될 사람들은 그에 앞서 선임의원들의 비서관으로 의회분위기를 익히게 하고, 거꾸로 사임한 전임의원들은 후임의원들의 비서관으로 남을 계획이다.
또 한달 1만2천마르크(약3백80만원)의 의원세비 중 2천마르크만 받고 나머지는 환경보호비용으로 모두 내놓겠다고 한다.
격식을 찾고 능률을 찾던 의사당분위기는 이들의 「침입」으로 수선스런 면모를 보일 것 같다. 정장은 고사하고 임산부 옷을 입고 의석에 앉아 뜨개질하는 여성의원을 보지 말란법도 없다.
이미 녹색당이 진출해 있는 주 의회에선 눈에 익은 모습이다.
녹색당의 구성요소는 간단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잡다하다. 변호사·교사·대학교수·전직 장군·기술자 등 대부분이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며 극우정치활동을 하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격한 공산당 활동을 하던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두드러진 공통점을 든다면 『작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정도랄까….
아무튼 현재의 서독을 떠받치고 있는 정치·경제·사회구조를 모두 「죽소개현」하자는 주장이 두드려져 보수적인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들의 이러한 우화적인 특징들은 위험하기만 하고 복에 겨워 투정하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무언가 신선한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위태위태한 느낌은 있으면서도 고도성장·풍요·물질만능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등한시 되어온 「작은문제」들을 부각시켜보겠다는 「인간성회복」의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김동수 「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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