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은행에 돈 쌓아놓고 생계지원금 받아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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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가 극빈층의 생계를 보장해 주기 위해 지출하는 기초생활보장 지원금이 옆길로 새고 있다. 지원 대상자 선정 기준인 금융재산 3500만원보다 많은 예금을 가진 사람이 3700여 명이나 되고, 이 중엔 1억원 이상의 재력가만도 1009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구멍 뚫린 행정으로 인해 국민의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낭비되고, 막상 지원받아야 할 극빈층은 고달픈 삶의 질곡에서 허덕이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는 극빈층을 위해 한해 예산을 4조원 넘게 투입하는 기본적 복지시스템이다. 전국에서 148만여 명이 1인당 월평균 29만원 정도의 정부 보조를 받는다. 그런데 이들 수급자에 '위장 빈민'이 끼는 것은 사전.사후 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재산과 소득이 있으면서도 허위 서류로 정부 돈을 타내려는 사람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이들을 걸러내지 못하는 시스템이 더 문제다. 신청 단계에서부터 은행 전산망 조회를 통해 예금 잔고를 확인하는 등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 또 부정 수급자로 적발된 사람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철저히 회수하고 형사고발 하는 등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정부 지원금을 '눈먼 돈'으로 아는 잘못된 인식을 뿌리 뽑아야 한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날로 늘어나는 빈곤층의 복지 문제 해결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기본적 복지시스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국가에 의한 최소한의 생계 보장도 필요하지만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겐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의 시혜적인 복지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