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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파·이적파·암거래파 … 둘이서 한 개비 나눠 피우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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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전쟁통도 아니고 이렇게 힘들게 담배를 피워야 하나.”

 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앞에서 만난 박희규(72)씨와 신모(74)씨는 담배 한 개비를 갖고 번갈아 피우고 있었다. 박씨는 “담뱃값 인상에 대비한다고 했는데 지난해 10월부터 담배 구하기가 힘들어져 7갑밖에 못 사놨다”며 “기초연금을 담배로 줬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담뱃값이 2000원씩 인상되면서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담배를 끊는 ‘금연파’가 증가했고 기존 담배 대신 전자담배로 옮겨간 ‘이적파’, 담배를 사재기하거나 중고거래를 찾아 헤매는 ‘암거래파’도 등장했다.

 서울시내 각 구청의 보건소 금연클리닉들은 문전성시다. 강서구 보건소는 “지난해 12월 금연클리닉 등록자가 전년 동기보다 9.4배 늘어난 187명”이라고 했다. 20년간 담배를 피웠다는 직장인 한형민(37)씨는 “한 달 담뱃값이면 둘째 아이가 먹는 분유 두 통을 살 수 있다”며 “금연클리닉에 등록해 완벽하게 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 지난달 금연초·금연패치 등 보조용품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9배 증가했다.

 반면 편의점과 수퍼의 담배 손님은 급격히 줄었다. GS25 낙원상가점 판매원은 “최근까지 하루에 열 번도 오가며 한두 달치 담배를 미리 사놓던 ‘월동준비파’가 많았다”며 “그런 손님들의 발길이 1일부턴 뚝 끊겼다”고 말했다.

 타임스토어 서교홍대점 염홍규(60) 사장은 “‘담배 400만원어치를 사놔서 평생 피울 것을 다 준비했다’던 할머니 손님도 있었다”며 “연말 사재기가 심한 것으로 봐 향후 6개월간은 손님이 뜸할 것”이라고 전했다.

 담배를 둘러싼 사건사고도 적지 않았다. 2일 오전에는 서울 신림동의 한 편의점에서 회사원 김모(37)씨가 “어제 없던 담배가 왜 갑자기 많이 진열돼 있느냐”며 편의점주 안모(49)씨를 구석으로 밀쳤다가 불구속 입건됐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선 “담배를 사려고 돈을 입금했더니 ‘먹튀’했다”며 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글도 등장했다.

 PC방·커피숍·호프집 등에서도 흡연석을 둘 수 없게 되면서 자영업자들의 한숨도 커지고 있다. 서울 홍제동 e-네이쳐 PC방 이영환(53) 사장은 “PC방은 밤장사로 매출을 올리는데 금연이 시행되면서 밤 손님이 5분의 1로 줄었다”며 “전기세와 임대료를 내고 나면 30만원 벌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3가의 한 호프집 주인 이모(61)씨는 “규모는 작아도 흡연이 가능한 영업장이라 애연가들의 성지로 불렸는데 장점이 없어졌다”고 푸념했다.

채윤경·김선미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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