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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의 우편번호(48)-「여보」의 시선(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누가 자기를 보고 살핀다고 하면 별로 유쾌한 기분이 들지않을 것입니다. 감시를 당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다」거다 「살핀다」는 그 시선의 문화가, 대립이나 경계의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게된 것은 역시 근대적인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증거로 「보고 살피다」의 준말로 예부터 쓰여온 「보살피다」라는 말뜻을 생각해보면 알것입니다. 그것은 정반대로 무엇을 감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보호하고 도와준다는 의미입니다.
시선의 의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서로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가령 유목문화에 있어서의 시선은 목동의 양이나 가축을 지켜보는 것처럼 주로 망을 보는 행위인 것입니다. 양이 무리에서 도망쳐 나가지 않을까, 늑대가 습격하지는 않을까. 목동의 눈은 두리번거립니다. 감시의 눈초리이지요.
그러나 농경문화권의 친선은 아주 다릅니다. 논밭에서 곡식이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는 농부의 시선은 양떼를 지켜보는 목동의 그것과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농작물은 식물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제 보아도 그런것같고 오늘 봐도 그런것같습니다. 눈에 띄지않는 변화입니다. 그것은 제자리에 있으며 도망치거나 또 늑대가 습격하여 잡아먹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농부가 논밭을 보는 것은 단지 그것을 가꾸기 위한 것입니다. 풀을 뽑아주고 거름을 주고, 논물을 대주고…. 이를테면 곡식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지요. 양은 혼자서 풀을 뜯지만, 그리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스스로 몸을 피할 줄도 알지만, 농작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쓰러지고 잡초가 있으면 덮이고 맙니다. 그들의 「눈」을 대신해서 보아주어야 하고 주위를 살펴주어야합니다. 농경문화의 시선은 감시자가 아니라 보조자로서의 마음을 담고있는 것이지요.
심청전을 읽어보면 잘 알수있습니다. 심청전은 두말할 것 없이 「효」를 소재로 한이야기지만, 동시에 그것은 「본다」는 시선의 문화를 주제로 한것이라고해도 무관할 것입니다. 즉 눈먼 심봉사의 「눈뜨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신재효의 판소리본에는 심청이의 청자는 맑을 청자로 되어있지않고 눈망울 청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심청이의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한말이 이 애의 이름을 눈망울 청이라고 지어달라는 부탁이었읍니다. 그들 부부의 평생 한이 눈못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애가 커서 심봉사의 손을 끌고다니면, 바로 그의 「눈동자」가 되어주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심청은 심청(청)이 아니라 심청(청)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심청이가 아버지를 보살핀다는 것은 아버지의 눈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심청이의 일방적인 사랑이나 효만으로는 안되는 일입니다. 심봉사가 눈을 뜨게된 것은, 일방적인 기적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죽은줄 알았던 심청이가 나타났기 때문에, 사랑하는 딸을 보려고 자기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려했기 때문에 개안이 된것입니다. 심봉사가 딸을 보려고한 그 욕망과, 아버지의 눈을 뜨게하려는 심청이의 의지가 합쳐서, 비로소 그 어둠이 열렸던 것이지요.
심청이는 모든 자의 눈동자로서 존재합니다. 그 이름대로 어둠을 여는 눈망울로서의 여인이지요. 심봉사만이 아니라 역사를 눈뜨게하고 무지와 독선과 폭력의 어둠에 눈이먼 그 사회의 무서운 눈꺼풀을 열게하는 아리따운 여인입니다. 그녀는 새벽의 빛으로, 그리고 새봄의 그 햇살로 우리에게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도 어느새 유목문화권의 그것처럼 감시의 눈으로 바뀌어가고 있읍니다.
핏발이선 눈으로 서로를 감시하고 서로의 약점을 밝혀내고 서로의 행동을 구속하는 자수의 눈으로 말입니다. 그러한 눈도 물론 필요합니다. 도둑이 많아지고, 폭력자와 불의의 인간들이 큰 기지개를 켜는 세상에서는 늑대로부터 양떼를 지키는 목동같은 그 시선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그 옆에 심청이의 눈이 없다면, 조금씩 자라가는 들곡식을 보살피는 따스한 농부의 그 눈초리가 없다면, 감시의 시선역시도 무의미해집니다.
마치 전화를 거는 것처럼, 나날이 열기가 식어가는 겨울벌판에서 사람들은 외칩니다. 「여보세요」「여보세요」라고. 여기에도 작은 한 생명이 사랑을 목말라하는 외로운 존재가 이렇게 숨쉬고있음을 보아달라고. 그렇지요. 서로가 서로를 보아주어야 합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작은 풀싹들, 작은 먼지라 할지라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심청의 「눈」으로 보아야지요. 그것들이 당신을 향해 「여보세요」라고 부르고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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