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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불화의 재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우리 미술계는 해묵은 불화와 암투를 재연하고 있는 인상이다.
국전의 말썽을 없애기 위해 새로 만든「현대 미술 초대전」이 국민들에게 첫선을 보이기도 전에 시비부터 일고있다.
표면적으로는 국립 현대미술관이 초대한 2백90명의 미술가 중에서 거의 3분의 1이나 되는 90명의 각자가 출품을 보이코트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두개의 엇갈린 입장이 반영되고 있다.
하나는 국전제도를 폐지한 정부측의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국전 시절의「특권」에 야수를 가진 일부 초대·추천작가들의 입장이다.
정부의 입장을 대행하는 현대미술관 측은 국전 폐지와 함께 새로 만들어 낸「초대전」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 한국 현대미술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작가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그 초대작가들 가운데는 과거 국전시대의 초대·추천작가 90명도 포함해서 명실상부한「초대전」을 만들겠다는 뜻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국전의 일부 초대·추천작가들은 과거 그들이 누려온「특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국전초대·추천 작가회」라는 단체까지 만들고「현대미술관」의 초대에 부응하는 대신 그들만의 전시회를 열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들 양측의 타협은 거의 불가능한 채로 미술계의 싸움은 노골화할 모양이다.
이같은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우선 국전 폐지라는 혁신적인 제도개혁이 아직도 분명한 매듭이 지어지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국전 제도가 혁신되었다면 그것이 남을 수 있는 문제들도 완전히 제거됐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말썽의 소지를 남긴 정부당국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과거의 국전을「공모전」과「초대전」으로 나누면 문제가 없어진다는 안이한 사고방식이 지금 미술계 분열의 불씨를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국전」폐지와 함께 없어진 국전의 그림자를 놓고 현실적인 이해에. 연관지어 생각하는 초대·추천 작가들의 집단행동에도 문제는 없지 않다.
30여년간 지속되어온「국전」을 폐지했던 가장 큰 명분이 관료주의, 특권주의, 정실주의, 부패예술 형태에 있었다면 그 비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기약한 새 제도의 수용에는 무조건 반대보다는 대화를 통해 좀더 나은 제도를 지향하면서 참여하는 족이 한국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전의 초대·추천 작가들이「국전 귀족」이라는 세평까지 들어가면서 집단행동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빚는 것은 결코 떳떳한 행동은 아닌 것 같다.
그 점에서 이 말썽을 계기로 정부와「초대·추천작가」들을 포함한 우리 미술계가 새로운 출발의 기분을 가지고 미술계 풍토 개선에 기여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우선 국전 폐지의 결의가 비리의 척결임과 동시에 예술 행동의 공정한 평가 회복이라는 두개의 목적에 부응한 것이 되기 위해서 분명한 보완작업이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과거 후진국의 문화 예술정책의 한 징표였던 국가관리 미술전의 폐지를 좀더 철저히 하라는 뜻이다.
국전의 타성은「공모파」의 존속을 그런대로 인정하게 했지만, 어중간한「초대전」마저 말썽을 일으키며 되살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미술계는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도 관 주도 미전의 탈피를 요구한다고 할수 있다.
사실상 75년 이전에 단지 2개만이 유지되었던 화랑이 지금 40여 개에 이르고 있으며 그들의 재정·운영의 능력도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다.
화랑뿐 아니라 미술회관 등 대여를 위한 전시 시설도 크게 좋아졌다. 그 뿐 아니라 권위있는 민전도 여러개 생겨서 정상적 발전을 기하고 있다.
그런 여건 변화들은 80년대 우리 미술인들의 반성과 자학을 요구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어디까지나 작가 정신에 투철해야 하며 끊임없고 진지한 창작행동을 통해 항상 준엄한 사회적 평가를 받아야할 것이요, 결코 예술외적「정치」행동으로 이익을 확보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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