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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계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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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류는 과연 나와 당신하고는 다르군요』소설가「스코트·피츠체럴드」가「헤밍웨이」 에게 한 말이다.
「피츠제럴드」는 할리우드의 인기 작가로 상류 못지 않게 돈을 물 쓰듯 하고 있을 때였다. 「헤밍웨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피츠제럴드」는 자기가 미국의 상류계급에는 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돈의 씀씀이만이 다른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상류는 상류 다운데가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상류계급의 벽은 상당히 높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선 상류는 골프클럽, 앨드클럽, 디너클럽 등 가입금이 비싼 클럽의 회원이 되어야한다.

<나와 너의 상류달라>
자동차도 오너 드라이버이어서는 안 된다. 미8군 영내 출입증은 동시에 확실한 상류에의 자격증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는(기차·비행기를 막론하곤 1등 석에 앉거나 1등을 탈 수있는데도 일부러 안타는 사람이어야 한다. 집은 동빙고 성북동 이태원 방배동 등 특급지에 있을수록 좋다. 물론 이런데 살수 있는데도 일부러 안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대신에 별장 콘더미니엄 농장 중 어느 하나라도 소유하고 있어야한다. 많든 적든 증권도 있으면 좋다. 상류는 또 병원에 가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의사의 진찰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의료보험의 혜택을 바라는 정도의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매주 한번은 골프플 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우나탕에 들르고는 가볍게라도 술을 나누고 헤어지는 우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틀림없이 상류감이다. 한마디로 돈 걱정없이 하고 싶은 일을 웬만큼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상류가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조건 중의 그 어느 하나라도 총족시킨다는 것은 l백50만원 이하의 월 소득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경제 기획원에서 지난주에 발표한「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월 소득 50만원 이상의 가구가 7·6%밖에 되지 않는다.
상류의 조건을 하나도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는 1백50만원 이하의 소득 층이 이처럼 상류 행세를 해야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네 상류층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회계층 의식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것이다. 아무리 이코너미 클래스로라도 크게 벼른 끝에 외국관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나라 형편으로 봐서는 상류수준이라 하더라도 1등석을 메운 사람들을 보면 역시 자기는 상류이하밖에 안 된다고 여기게 된다. 엊그제까지도 7푼 짜리 다이어반지로 만족하던 아내가 어쩌다 나간 동창회에서 돌아와『언제나 우리도 남들처럼 잘 살 수 있느냐』고 남편에게 푸념하게 되는 것도 1캐럿 이상의 다이어를 봄내는. 옛 친구들 때문이다.

<1등 행세 해야하나>
통계로 보면 1백50만원 이상의 소득 층도 0·3%밖에 되지 않는다. 대충 2만4천 가구가 된다. 이들이 우리 나라의 진짜 상류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말로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의심스럽다.
이 숫자가 맞는다면 과연 매일 이 골프장이 터질세라 몰려드는 골퍼들은 모두 어느 나라 사람들이며, 증권시장이며 복덕방에서 거래되는 돈은 누구의 돈들인지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처럼 남의 재산에 신경을 쓰는 사람도 드물다. 입학원서·병역신고 카드, 하다 못해 대학강사의 신상카드에까지 부동산 얼마·동산 얼마를 갖고 있느냐를 묻는 난이 있다.
물론 이것을 곧이곧대로 적어 넣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없는 사람은 혹시나 없다고 해서 괄시받을까 해서, 또는 없다는게 부끄러워서 적당히 불려 쓴다. 있는 사람은 반대로 되도록 줄여 쓴다. 있는 자의 경계 본능이라고 할까.
이유는 이 밖에도 있다. 대부분의 상류는 그 자리에,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도 빨리 올랐기 때문에 미처 자기네가 상류에 속한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따라서 상류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몸과 살림을 돈으로 발라 나가야 한다. 그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더우기 같은 상류에도 여러 층이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기는 상류가 못된다고 여기고, 이에 맞도록 재산을 줄여 쓰게 된다.
물론 월 소득 25만원 미만의 가구가 계층간 갈등이 웬말 전체의 66%나 되는 나라에서 자기가 상류에 속한다는게 어딘가 떳떳지 못하게 느껴지는 때문에 애써 신분을 숨기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떳떳하게 벌어서 떳떳하게 생활하는 상류라면 굳이 상류임을 숨겨야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안정된 선진국일수록 중류층은 55%가 넘어야할 것은 물론이지만 상류층도 10%는 넘어야한다. 하류 계층의 폭이 넓은 나라일수록 상류층도 좁은 것이다.
상류층이 4%밖에 안 되는 이탈리아 하류층은 52%나 된다. 하류가 16%밖에 안 되는 영국에서는 상류에 속하는 사람이 24%나 된다. 이처럼 상류가 흔해지고 윤택한 중류층이 많으면, 그리고 또 계층간에 큰 벽이 없이 유동적이라면 사회 각 계층 사이의 심리적 갈등이 일어날 까닭이 없다.「피츠제럴드」가『자기와 다르다』고 말한 것은 상류에 대한 선망의 뜻에서이지 결코 비난의 뜻에서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상류는 딱하기만 하다. 그 많은 돈올 가지고도 마음놓고 상류행세를 하지 못한다. 워낙 이 세상 바닥이 좁은 것이다. 그러니 항상 남의 이목을 꺼려야 한다.
여기 비기면 미국의 상류계급은 매우 자유롭다. 상류의 생활권은 중류이하의 생활권과는 떨어져 있다. 따라서 보통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누구나가 능력 있고 노력만하면 상류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상류에 대한 반감도 있을 수 없다. 상류 역시 자기네가 상류라고 해서 귀빈도 아니요 VIP대접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고 있지도 않다.

<옳게 사는 지혜 터득>
우리 나라에서는 그게 다르다. 상류는 어디를 가나 VIP대접을 받으려한다. 하기야 VIP대접을 해주는 쪽에도 탈은 있다. 사람을 저울질할 마땅한 기준이 달리 없다는데도 탈은 있다. 그러나 이런데서 계층간에 공연한 틈새가 벌어지는 것이다.
상류에 오르기도 어렵지만 상류답게 산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영국의 옛 상류계급을 참으로 상류답게 만든 노블레스 오볼리지(nobesse oblighe=귀족의 의무)를 새삼 들먹이는 것도 쑥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네 상류가 돈밖에 내세울게 없는 계급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래야 상류가 떳떳하게 상류행세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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