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휠체어농구 선수들 "숙모님 오셨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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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휠체어농구 경기 장면을 비디오카메라로 찍고 있는 권정희씨. 최정동 기자

권정희(25)씨는 휠체어 농구대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11일 SK텔레콤배 전국휠체어농구대회가 열린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도 권씨는 있었다.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들고 선수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그에게 선수와 대회 관계자들이 "정희, 왔구나"라며 친근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어느 선수는 신입 선수를 권씨 앞으로 데려와 "휠체어 농구계의 숙모님이시다. 잘 모셔라"라며 인사를 시키기도 했다. 친척 같고 누나 같은 권씨를 그들은 '숙모'라고 불렀다.

권씨는 2001년부터 인터넷 사이트인 '휠체어농구가 있는 행복한 세상'(이하 휠농.cafe.daum.net/weelchairBB)을 운영해 왔다. 2003년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휠체어농구연맹보다 2년이나 빨랐다.

연맹 사무국장 윤용석씨는 "'행복한 세상'에는 휠체어농구 선수 219명 전원의 프로필과 경기 뒷얘기 등이 담겨 있습니다. 연맹의 공식사이트보다 더 빠르고 정확할 때가 많죠. 2003년 연맹 사이트를 정비할 때 '휠농'을 참고했을 정도니까요."

대구의 한 초등학교 전산 담당 직원인 권씨가 휠체어농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고등학교 2학년 때다. 텅빈 관중석을 메우기 위해 동원된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난생 처음 휠체어 농구를 관람했다.

"경기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장애를 극복하고 운동에 열심인 선수들을 보고 감동한 것 같아요. 그 다음날부터 봉사자 자격증을 반납하고 일반 관람객으로서 나머지 경기를 모두 봤죠."

그후 그는 휠체어농구의 열혈 팬이 됐다. 대학에 입학한 2000년 본격적으로 경기 장면을 촬영해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고가의 카메라를 구입하고 교통비도 마련했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현장에 나타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선수들이 없게 됐고 관람석이 아닌 본부석에 정희씨 자리까지 마련됐다.

"휠체어농구를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어요. 일반 스포츠로도 굉장히 매력있는 게임이에요."

휠체어농구대회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그냥 한번 보세요"라고만 말했다.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휠체어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다른 팀 선수를 부축해 다시 휠체어에 태워주는 동료애, 격렬한 몸싸움과 절묘한 슈팅 등을 한번만 본다면 누구든지 휠체어 농구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바람은 휠체어농구 실업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 비장애인들로 구성된 휠체어농구단 일곱 개를 포함해 전국에 22개의 휠체어농구단이 있다. 모두 직장인이나 동호인들로 구성된 아마추어팀이다. 직장 생활과 병행하기 어렵다보니 기량 향상에 한계가 있다. 관중이 워낙 적어 경기장 입장료는 물론 무료다.

"썰렁한 관중석을 쳐다볼 때면 제가 괜히 미안해져요. 보다 많은 사람이 경기장에 와서 장애인이 아닌 운동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해 줬으면 기쁘겠어요."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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