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에세이] 백악관 35년 노기자의 부시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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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강타당한 미국 뉴올리언스시는 물이 빠지면서 조금씩 정상을 되찾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다. 이번엔 기름 범벅이다. 시 동남부의 한 정유시설에서 석유가 흘러나와 인근 땅 8㎢를 기름밭으로 만들고 말았다. 환경 전문가들은 땅바닥을 1m는 걷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늑장 대처로 온갖 비난을 받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2일 또 현장을 찾았다. 전날 뉴올리언스에 정박한 군함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는 군용 트럭을 타고 시커먼 물속에 잠긴 흑인 거주구역 등을 시찰했다. 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지 2주 만에 피해지역을 제대로 둘러본 것이다.

부시는 시찰 도중 기자들을 붙잡고 틈틈이 해명도 했다. 흑인 밀집지역이라 대응을 게을리했다는 힐난을 의식한 듯 "폭풍우가 사람을 골라 때리지 않듯이 복구 노력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라크전 때문에 주 방위군에서 충분한 병력을 지원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억지"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서 예전 같은 당당함을 찾기는 어려웠다. 마침 이날 마이크 브라운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이 물러났다. 자진 사임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성난 민심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백악관의 판단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부시는 뒤늦게나마 민심을 수습하고 복구 작업을 지휘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돈이 들어가겠지만 이미 투입하기로 결정한 복구사업비만 600억 달러를 넘는다. 그러나 그에 대한 공격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절대 전쟁을 먼저 시작한 적이 없다. 그러나 부시는 선제 공격이라는 야만적 논리로 존경받던 미국을 미움받는 나라로 만들었다." 35년째 백악관 출입기자인 헬렌 토머스(85)는 12일 워싱턴 조지타운대에서 200여 명의 학생을 앞에 두고 이렇게 일갈했다. 그는 "국민이 나서 이라크에서 미군을 돌아오게 해야 한다"며 "허리케인 피해 복구 현장에서 땀 흘리는 미군을 보고 싶다"고 목청을 높였다. 청중에 비해 박수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다.

워싱턴 = 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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