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구세군 급식차 50년만에 등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이번 겨울 어느날, 소련의 타스통신은 이런 급전을 내보냈다.
『동장군이 엄습하면서 구세군트럭 2대가 매일 저녁 수도의 거리를 누비고 있다. 트럭이 멈추는 곳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고, 구세군 사람들은 이들이 내미는 주발에 한 조각의 빵, 치즈와 함께 국을 퍼주고 있다.』
바로 파리의 이야기다. 타스통신은 이 같은 내용과 함께 파리의 거렁뱅이가 20만 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 보도직후 타스통신측은 파리의 부랑자가 20만명이 아니라 2천명이라고 정정했지만 소련보도기관으로선 아뭏든 물실호기의 「횡재」 기사였을게 틀림없다. 사실 파리의 구세군이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이 같은 급식차를 등원한 것은 꼭 반세기만의 일이다. 이른바「민중의 국」「밤거리의 국」으로 불렸던 구세군의 급식차는 경제공황이 한참이던 1920∼30년사이 파리거리에 등장했다가 31년이후 자취를 감췄었다. 그런데 영영 사라진줄 알았던 「민중의 국」 이 이번 겨울 다시 파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일 않고 비럭질하며 지내는 부랑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요즘 파리거리엔 이런 부랑자뿐 아니라 「누보·레·미제라블」 (새로 등장한 비참한 사람들) 이 나날이 늘고있다.
가톨릭구호단체의 한 책임자는 82년 한햇동안 파리에서만 1만1백20가구가 구호를 요청했다고 밝히고 있다. 79년의 4천4백만 가구에 비하면 두배 이상이나 는 셈이다. 파리의 부랑자들도 76년4천7백명에서 지금은 약8천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프랑스의 여론조사기관인 IFOP여론조사는 지난5년간 극빈자가 84%나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중65%가 25∼50세의 한창 일할 나이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구공시(EEC)의 통계에서도 프랑스는 역내국가 중 아일랜드·이탈리아 다음으로 가난한 나라다. 2백만명을 돌파한 실업증가가「누보·레·미제라블」을 양산한 것이다.
각 신문들이 「레·미제라블」특집을 계속하고 있고「미테랑」대통령이 최근 주요구호단체책임자들과 만나 효과적인 구호를 당부했는가하면 정부가 긴급구호대책을 발표해야 할 만큼 극빈자문제는 프랑스의 골칫거리가 되고있다.
『모든 것을 부자들에게 물리겠다』고 공약했던「미테랑」사회당 정부의 각종 부의 재분배정책에도 불구, 실업자는 계속 늘어나는가하면 부유층은 여전히 사슴과 멧돼지사냥을 즐기며 호화판 생활을 누리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