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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지구 생물 6번째 대멸종,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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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호 25면

북극권의 최고 포식자인 북극곰은 북극권 생명 멸종의 위기를 피할 수 없다. 지구의 최고 포식자인 인류의 운명도 여섯 번째 대멸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점을 최대한 늦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멸종(滅種)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

<20> 인류에게 무슨 일이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긍정적인 단어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과연 멸종은 그렇게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발 밑엔 바글거리는 삼엽충이 밟히고, 눈이 다섯 개나 되고 입에서 코끼리 코처럼 기다란 팔이 나오는 오파비니아가 그 팔 끝에 달려 있는 집게손으로 옆구리를 꼬집는다면 기겁을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또 길이가 1m, 폭이 수십㎝에 이르는 아노말로카리스가 배 쪽에 나 있는 입으로 등허리를 간질이는 바다에 들어가 헤엄치고 싶은가? 다행히도 이런 생물들은 5억 년 전에 살았다. 지금은 멸종해서 없으니 마음 놓고 바다에 들어가도 된다.

난 13세 이하의 아이들처럼 공룡을 아주 사랑한다. 그것도 아크로칸토사우루스와 데이노케이루스 같은 거대한 수각류 공룡이 좋다. 하지만 난 아이들과는 달리 저 공룡들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런 공룡이 사나운 육식(肉食) 공룡이어서가 아니다. 트리케라톱스 같은 초식공룡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해서 우리에게 우유를 나눠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숲은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닭만큼 작은 공룡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은퇴한 노인들이 공원에서 고양이와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듯이 작은 공룡에게 먹이를 나눠줄 수도 없다. 얌전한 녀석들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고생대의 절지동물들이 사라지자 공룡 시대인 중생대가 시작됐다. 공룡이 멸종하자 신생대가 시작돼 포유류의 시대가 왔다. 마침내 인류도 탄생하게 됐다. 새로운 생명이 출현하기 위해선 누군가가 그 터전을 비워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멸종이다.

멸종은 새로운 생명 탄생의 원동력
건축 용어 가운데 니치(niche)란 게 있다. 장식을 위해 벽면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공간을 말한다. 벽감(壁龕)이란 번역어가 워낙 어려워 차라리 ‘니치’라고 쓰고 만다. 이 용어는 생태학에서도 ‘생태적 니치(ecological niche)’란 표현으로 흔히 쓰인다. 보통 ‘생태적 지위’라고 번역되는데 번역어만 보면 도대체 뭘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구석’ 또는 ‘빈틈’ 정도로 이해하고 우리말로 그렇게 옮긴다.

지구에 살고 있는 무수한 생명들은 저마다의 ‘생태적 니치’, 즉 하나의 ‘구석’을 갖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에도 여러 종류의 새들이 산다. 휘파람새와 솔새가 같은 그루의 가문비나무에서 각각 위쪽과 아래쪽을 나눠 차지하고 먹이 활동을 한다. 갯벌엔 많은 종류의 새들이 모여 산다. 플라밍고는 수십㎝ 깊이에서 작은 연체동물과 갑각류를 잡아먹고 산다. 오리는 꼬리를 하늘로 향하고 머리를 거꾸로 박은 채 수생식물의 씨앗이나 달팽이와 곤충을 먹는다. 도요새는 긴 부리로 더 낮은 곳의 작은 해양 무척추동물과 곤충을 먹으며, 물떼새는 아예 다리를 물에 담그지 않고 드러난 갯벌에서 먹이를 찾는 식이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구석(니치)’들이 모여서 거대한 먹이사슬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생태계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매우 조밀하다. 그래서 한 가지 생명이 사라져도 별 티가 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붕어가 갑자기 멸종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붕어가 먹이로 삼던 동물성 플랑크톤과 수생 곤충의 애벌레가 생태계에 과도하게 넘쳐나진 않는다. 다른 물고기들도 이것들을 먹기 때문이다. 붕어를 먹잇감으로 삼던 농어도 굶어 죽지 않는다. 농어가 잡아먹는 게 붕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농어가 잡아먹을 물고기는 여전히 많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붕어가 사라진 그 빈 ‘구석’은 새로운 생명이 등장해 메꾼다. 결국 멸종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붕어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비슷한 지위의 동물들이 갑자기 수십∼수백 종(種)이 사라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먹이사슬은 일단 엉성해지기 시작하면 사슬이 끊기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해 그 빈 구석을 채우기 전에 다른 빈 구석이 계속 생기기 때문이다. 멸종이 멸종을 부르는 상황이 된다. 급기야 살아남은 생명보다 사라진 생명이 더 많아진다. 대멸종이 일어나는 것이다.

멸종에 가까이 있는 코뿔소.

생명의 95%가 사라진 대멸종도 있었다
5억4300만 년 전 고생대가 시작한 이후, 그러니까 생명에게 단단한 껍데기와 앞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지구에선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일어났다. 첫 번째 대멸종은 4억4000만 년 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期) 말에 있었다. 이때 전체 생물종의 85%가 사멸했다. 3억7000만 년 전 데본기 말에 일어난 두 번째 대멸종 때는 70%의 생물종이 멸종했다. 2억5000만 년 전 페름기 말엔 전체 생물종의 95%, 2억5000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 때는 생물종의 80%, 그리고 중생대의 종말을 가져온 6500만 년 전 백악기 말 대멸종 때는 전체 생물종의 75%가 사라졌다.

지금까지 가장 심각했던 대멸종은 고생대 페름기에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로 넘어가던 시절의 세 번째 대멸종이다. 이때 생명의 95%가 자취를 감췄다. ‘95% 생명의 멸종’은 무슨 뜻일까? 100종의 생명이 살고 있었다면 이 가운데 95종은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조리 사라졌으며 나머지 5종은 겨우 몇 개체씩만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이는 ‘생태적 구석’이 100개 있었다면 95개는 완전히 비었다는 뜻이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생명들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채우게 된다. 그 시작은 몇 개체씩 남아 있던 5개의 ‘구석’에서 시작된다. 5개의 종 역시 몇 마리 없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서로 만나서 유전자를 교환할 기회가 거의 없다. 고립돼 있는 개체들끼리 자신의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진화해 나간다. 긴 시간이 지나면 이들은 완전히 다른 종으로 변하고 만다. 그리고 이들이 비어 있는 ‘구석’을 하나씩 채워 나가고, 그 결과 먹이사슬이 촘촘해지면 다시 생태계가 풍성하게 형성된다.

멸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생명의 기본현상이다. 대멸종은 급격히 변화한 자연환경에 맞선 생명의 혁신적 창조과정이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첫째, 온도가 급격히 오르거나 떨어진다. 둘째,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셋째, 화산 등의 작용으로 대기의 산성도가 높아지고 산성비가 내린다.

6번째 대멸종 시기는 ‘인류세(人類世)’
다섯 번째 대멸종 때 공룡들이 사라진 덕분에 포유류의 세상이 왔고 우리 인류도 탄생했다. 대멸종 덕분에 탄생한 인류가 주변 동식물의 멸종을 걱정하는 ‘기특함’을 보인다. 인류는 마치 자신들은 멸종하지 않을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바로 여섯 번째 대멸종 기간이란 것이다. 그것도 고생대 페름기-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사이의 세 번째 대멸종보다 훨씬 큰 규모의 대멸종이다.

고생물학자들은 세 번째 대멸종이 최소한 100만 년에 걸쳐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살았던 동물들은 자기네가 멸종기에 있는지 눈치도 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 주변에서 동식물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인류가 출현하기 전엔 포유류 한 종이 멸종하는 데 평균 50만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인류가 등장한 이후엔 한 달에 한 종꼴로 포유류가 멸종했다.

학자에 따라 견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여섯 번째 대멸종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20년 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시작됐다. 수십억 년의 지구 역사에서 이 정도의 차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약간 과도한 걱정을 하는 과학자들은 앞으로 500년 안에 생물 종의 50%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길어야 1만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세 번째 대멸종보다 100배나 빠른 속도로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멸종의 원인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온이 5~6도씩 오르진 않았다. 지난 150년 동안 겨우 0.8도 올랐을 뿐이다. 산소 농도는 변함이 없고, 대기의 산성도는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오히려 개선됐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빠른 속도로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을까?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인류의 존재 그 자체에서 찾는다. 인류는 생태계에서 한 개의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 ‘구석’이 워낙 커서 전체 생태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섯 번째 대멸종 시기를 고생물학자들은 ‘인류세(人類世)’라고 부른다.

“대멸종으로 생긴 빈 ‘구석’을 새로운 생명들이 채워나갈 텐데 대멸종이 뭔 대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분명 큰일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대멸종을 보면 당시의 최고 포식자들은 반드시 멸종했으며, 지금의 최고 포식자는 인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규칙에 따르면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인류의 멸종 가능성을 그린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우리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종(種)으로서의 인류를 생각해야 한다”는 명대사가 나온다. 상위 포식자가 없는 인류의 멸종 속도는 오직 인류에게 달렸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주는 교훈
인류라고 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시 언젠간 멸종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인류가 지금 멸종하기엔 좀 억울하다. 진화사에서 보면 대부분의 종은 500만~600만 년 정도 존재한다. 인류처럼 커다란 종도 100만~200만 년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이제 겨우 20만 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가 여섯 번째 대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까닭은 생태계와 지구, 그리고 우주를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우리 인류의 생존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에선 “우리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종(種)으로서의 인류를 생각해야 한다(We should not think of us as individuals but as a species.)”는 브랜드 박사의 감동적인 대사가 나온다. 영화에선 인류의 멸종을 피하기 위해 인간의 수정란 1000 개를 갖고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간다. 영화 속의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은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구석’은 하나뿐”이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인류만으로 모든 생태계를 구성할 순 없다. 외계에서 새로운 지구를 찾기보다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 환경과 잘 어울려 살 궁리를 하는 게 인류의 멸종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길이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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