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아버지의 '산 사랑' 가슴에 사무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 한 잡지 편집실에서 생전의 아버지 김근원씨(右)와 나란히 앉은 김상훈씨. 두 사람이 산에서 함께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다고 한다.

"아버님이 왜 산만 찍다 가셨는지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사진가 김상훈(52)씨는 선친 김근원(1922~2000년) 선생이 남긴 산 사진을 어루만졌다. 평생 산에 매달린 김근원의 사진집 '산, 그 숭고한 아름다움'(도서출판 바움)을 엮으며 그는 아버지가 남긴 20여만 점의 필름을 하나하나 마음으로 읽었다. 그 가운데 77점을 고르면서 땀과 눈물을 함께 흘렸다. 아버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랐던 설악산.북한산.지리산.한라산.무등산.치악산.소백산.덕유산 등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아버님은 우리 산이 포근한 어머니 품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산이 우리 마음의 산이고 고향 같기에 사진으로 표현해 우리 모두의 마음에 함께 나누어 담자고요. 북쪽 산을 찍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시며 눈을 감으셨지요."

김씨는 생전에 아버지가 필름을 인화하던 감도보다 흑백의 명암 대비를 조금 더 짙게 해 사진을 뽑았다. 같은 사진가로서 아버지의 암실 작업을 지켜보며 아쉬웠던 점을 이 참에 과감하게 수정해 본 셈이다. 빛과 어둠의 옅고 짙음에 따라 수천 수만 이미지로 장엄하게 태어나던 '아버지의 산'을 좀더 극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검정과 흰 빛이 교차하는 산의 신비를 선친만큼 미묘하게 잡아내신 분이 없다는 생각이에요. 아버님은 산을 영상화하겠다는 것이 한낱 헛된 욕심에 불과하다고 자주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그 욕심이 그 만큼 산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녔다는 의미여서 용서될 수도 있겠다고 하셨어요. 저도 아버님께 같은 용서를 빌고 싶어요. 김근원 사진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사랑을 지녔으니까요."

김상훈씨는 사진이 아버지의 등산법이었다고 했다. 사진이 산을 보는 눈이었다는 것이다.

이영준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는 "김근원은 한국 산의 아름다움을 가장 강직하게 정형화한 산 사진의 원류이자 자연사 기록가였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김상훈씨는 요즈음 강만 찍는다. 경기도 지역에 있는 샛강에 매달린다. 아버지가 산에서 만난 마음을 아들은 강에서 보고 있다.

"산에 든다는 말을 입산이라 하지요. 저는 지금 강에 든다는 의미의 '입강'이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산이 밑에서 꼭대기까지 오르듯 강도 발원지에서 지류까지 따라가다 보면 꼭 산을 타고 정상을 밟는 기분입니다. 산과 강, 바람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인간의 길인지도 모르죠."

산에서 인생과 자연을 보았던 아버지에 이어 아들은 강에서 우리를, 우리의 삶과 마음을 보고 있었다.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