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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총장 임명 공백,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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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

류수노 방송통신대 교수는 6남4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20대 중반까지 아버지와 농사를 지었다. 군 제대 후 농사를 더 잘 지을 방법을 고민하다 방송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원격교육기관인 방송대 덕분에 낮엔 농사짓고 밤엔 학업을 할 수 있었다. 충남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친 그는 농촌진흥청에서 쌀 연구에 나섰다. 유해산소를 없애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수퍼쌀’을 연이어 개발했다. 방송대 1회 졸업생인 그는 99년 첫 방송대 출신 교수가 됐고, 지난 7월 총장 후보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해 첫 방송대 출신 총장 배출은 중단된 상태다.

 교육부는 국·공립대 총장 후보에 대한 임용 제청을 잇따라 거부하고 있다. 공주대도 지난 3월 김현규 교수를 1순위로 교육부에 추천했지만 반려됐다. 한국체육대도 21개월째 총장 공백 상태다. 지난 16일엔 경북대가 제청 거부 공문을 받았다. 국립대 총장은 교육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교육부가 교육공무원 인사위원회에서 심의한다. 교육부는 제청 거부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거부 사유가 개인 명예와 관련된 것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일부 후보자와 관련해선 부동산이나 자녀 등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는 설이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입을 닫고 있어 대학 구성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김 교수는 ‘임용 제청 거부 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까지 했다. 당시 행정법원은 “교육부가 처분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의견 청취도 하지 않았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류 교수도 “잘못한 것이 있다면 처벌받으면 될 텐데 사유도 설명하지 않고 제청을 거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처사는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후보자의 심각한 하자를 발견했다면 교육부는 수사기관에 고발하든지 했어야 한다. 국립대 교수는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 신분인데 감독기관인 교육부가 알고도 눈감아 준 셈이기 때문이다. 중대한 결함이 아닌데도 임용 제청을 거부한 것이라면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삼는다는 세간의 의혹을 벗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경북대 1순위 후보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회원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성명에 서명한 적이 있다. 류 교수는 2009년 이명박 정부 규탄 교수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청와대가 후보자들을 상대로 인사검증을 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 문제는 ‘청와대 개입설’로 번져 있다.

 2012년 교육부는 재정지원과 연계해 국립대 총장 직선제를 바꾸는 작업에 나섰다. 이후 대부분의 국립대가 간선제인 총장임용추천위원회를 거친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행태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국립대 총장을 앉히려는 게 아니냐는 시선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 대한 모욕이다.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그 성향에 맞는 총장을 앉히려는 시도가 나타날 것이다. 교수 간 줄서기나 돈 선거 같은 총장 직선제의 부작용보다 외부 정치가대학에 개입하는 게 더 큰 문제다.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