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미국의 환율 공세에 대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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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7월 중국 정부가 자국 통화인 위안화 환율을 절상했다. 위안화를 미국 달러화와 똑같이 움직이게 해 놓은 고정환율제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미국은 양국 무역의 걸림돌을 완화하는 진일보한 조치로 환영했다. 그럼에도 양국의 긴장관계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한.미 무역관계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미국의 제조업체와 의회는 대(對)중국 무역적자의 주범으로 중국의 환율정책을 지목해 왔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지난해 1620억 달러에 달했고, 올해는 32%나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이 달러당 8.3위안으로 고정해 놓은 환율제도를 포기하자마자 위안화 환율이 달러화에 2% 절상됐지만 미국 내 여론은 여전히 좋지 않다. 전미제조업협회(NAM)를 포함한 미국의 비평가들은 위안화가 턱없이 평가절하돼 있다고 지적한다. 무려 30~40%나 평가절하돼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 수출업체들이 불공정하게 이익을 얻고 있으므로 중국 정부가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미국은 관련 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올해 690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다. 물론 무역적자 논란의 표적은 중국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중국의 문제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미 수출업체들도 도매금으로 위험스러운 상황이 되고 있다.

특히 다음의 두 가지 점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환율정책을 의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하나는 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시장에서 중국에 밀리는 것을 우려해 자국 통화가 위안화보다 빨리 절상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이를 근거로 중국의 환율문제는 따지고 보면 아시아 전체의 환율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한국의 환율정책을 주목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 재무부는 1980년대 말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분류했었다. 그래서 한국에 좋지 않은 선입관이 있다.

침체한 자동차 산업을 비롯해 미국의 상당수 산업은 그들의 악화된 재무구조를 한국의 원화를 포함한 아시아 환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들은 의회와 정부에 아시아 국가의 환율정책에 강하게 대응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결과 최근 법안들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함께 겨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법안 중 하나는 부통령 후보로 나선 바 있는 조 리버먼 상원의원이 제출한 것이다. 이 법안은 한국을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국가의 하나로 지목하면서 이를 '환율을 조작하기 위해 개입한 징후'로 간주하고 있다. 리버먼 안에는 강도 높은 무역 제재 조치가 담겨 있다. 환율을 조작해 미국 제조업체에 해를 끼치는 국가에 대해서는 통상법 301조를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7월에는 영향력 있는 하원의원인 미시간주의 존 딘젤 의원이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에는 환율 조작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미국 상무부가 조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환율을 조작하는 국가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한국 정부와 재계는 환율 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다른 기구를 통해 한국이 환율을 조작하지 않으며 한국 수출업체들이 불공정한 이득을 얻고 있지 않다는 점을 미국 지도자들에 분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또 미국의 무역적자가 커지는 것은 환율이 아니라 다른 요인 때문이라는 점을 연구를 통해 입증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석한 미 워싱턴 애킨& 검프 법률회사 매니징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