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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안은 성모, 이 땅의 엄마 닮은 듯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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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예수는 어느 특정 나라를 위해 세상에 온 게 아닐 터다. 이 땅에 성모자가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최종태, 성모자, 1994, 종이에 파스텔, 49×37㎝. [사진 가나아트센터·서울미술관]

#1. 통유리 창으로 겨울 볕이 들어왔다. 전시장 한가운데는 한복처럼 노랗고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섰다. 최종태(82) 서울대 명예교수의 목조 여인상이다. 안쪽 방엔 파스텔로 그린 소녀상·성모자상이 걸렸다. 작은 규모의 이 전시가 꽉 차 보이는 것은 작가가 한평생 삶에, 신(神)에, 예술에 보여온 겸허함이 떠올라서일 것이다. 최종태 파스텔 그림전 ‘빛·사랑·기쁨’이다.

 #2. 외양간에서 태어난 아기는 보자기에 폭 싸여 있다. 갓 쓴 요셉이 옆에 서서 감사 기도를 올린다. 동네 아낙들이 산 구완을 위해 음식상을 차려들고 찾아왔다. 이 정겨운 풍경 한가운데 빛이 반짝인다. 운보(雲甫) 김기창(1913∼2001)의 우리식 성화(聖畵) ‘예수의 일생’ 연작 중 ‘아기 예수의 탄생’이다.

또 다른 그림에선 선녀가 댕기머리 아가씨를 찾아왔다. 천사가 동정녀에게 잉태를 알리는 ‘수태고지(受胎告知)’는 오랜 기간 서구 회화에 등장한 도상이다. 운보는 이 또한 우리식으로 바꿔 그렸다.

부암동 서울미술관이 성탄절을 맞아 소장품인 운보의 ‘예수의 일생’ 연작 30점을 걸었다. ‘오, 홀리 나잇!(O, Holy Night!)’전이다. 일곱 살 때 열병으로 청력을 잃은 운보에게 그림은 말이었고 밥이었을 터다. 전란을 겪으며 화가는 성화에 어떤 염원을 녹였을까. 운보는 “때는 6·25 전쟁의 가열로 온 민족이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 1952년 전북 군산의 피난처였다. 나는 군산의 처가에서 고통스러운 생활을 화필로 달래며 어서 이 땅에서 전쟁이 끝나고 통일된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고 있었다”고 쓴 바 있다.

운보 김기창, 예수의 생애 중 ‘수태고지’, 1952∼53, 비단에 채색, 63×76㎝. [사진 가나아트센터·서울미술관]

 최종태는 1952년 대전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58년 서울대 조소과에 들어갔다. 65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고 정신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평생 여인상을 깎고 그리게 된 계기다. “깨끗하고 맑고 청순하고 성스러운 것, 그 단어들이 상징하는 세계를 늘 그리워 하다 보니 소녀상을 만들었고 그것이 성모상이 되기도 했고 관세음보살상이 되기도 했다”고 그는 돌아봤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인천 소래의 샤르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피정의 집, 서울 대치2동 성당 등 여러 곳에 성모상을 만들었다. 99년 성북동 길상사에는 성모를 닮은 관음상을 세웠다. 종교간 화합의 상징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운보 김기창, 예수의 생애 중 ‘아기 예수의 탄생’. [사진 가나아트센터·서울미술관]

 최씨는 팔순에 출간한 책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바오로딸)에 이렇게 썼다. “세상은 험하고 목숨은 질기고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슬픔과 고통이 있고 즐거움과 기쁨도 있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예수가 인간을 대신해 속죄양이 되기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한 날, 성탄절이다. 우리의 한해는 어땠을까.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손을 모으고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권근영 기자

◆어디 가면 볼 수 있나

▶최종태 파스텔 그림전 ‘빛·사랑·기쁨’=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제5전시장에서 내년 1월 18일까지. 30여 점의 파스텔화, 채색 나무조각과 청동 여인상 출품.

▶‘오, 홀리 나잇!(O, Holy Night!)’=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내년 2월 15일까지. 성인 9000원, 3∼7세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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