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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보다 못 믿을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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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도은 사는 것과 쓰는 것에 주목하는 라이프스타일 기자입니다. 이노베이션 랩에서 브랜디드 컨텐트를 만듭니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믿음은 증거로 인해 공고해진다. 올해 산타와 직통되는 전화 서비스가 생기자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존재를 확신했다. 사흘 전부터 전화기를 붙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연결이 쉽지 않았다. 아침에 걸었더니 ‘선물을 싸느라 바쁘다’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고, 오후 7시쯤 시도해 보니 루돌프가 대변인격으로 나서 “저녁 식사 중”이란다. 스무 통 넘게 걸었지만 나중엔 아예 안내 멘트조차 들을 수 없는 불통이 됐다.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지금 막 썰매를 탔다’는 정황으로 이해시켰다. 하지만 그 사이 아이들은 포기 대신 질문을 쏟아냈다.

“산타 할아버지가 한국말을 배웠어요?” “핀란드에서 오시면 어디서 지내게 되나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았다. 말 바꾸기와 앞뒤 안 맞는 애드리브가 난무할 수밖에.

 불신 역시 증거로 인해 공고해진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따르면 젊은 수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산타의 불가능성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냈다. 전 세계 0~14세 인구가 18억5000만 명이라고 가정하면 산타가 방문할 곳은 1분에 39만 가구, 그러니까 1초에 6424가구라는 결론이었다. 이전에도 물리학자들이 비슷한 주장을 했는데, 썰매는 초속 104만6000m, 쉽게 말해 소리보다 3000배 빠른 속도여야 한다는 분석이었다

 그럼에도 믿지 못할 산타가 존재할 수 있는 건 믿음을 지켜주려 애쓰는 주변 어른들의 정성 때문일 터다. 불신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지 못하도록 믿음의 증거들로 막아선다. 웃돈 주고도 못 살 장난감을 구하기 위해 한밤중 마트에서 줄을 서고, 산타를 대신해 편지를 쓴다. 7세가 넘어서도 아이가 산타를 기다린다면 그것은 온전히 부모의 노력 때문이라는 연구도 있다.

 이만큼의 책임감도 없는 걸까. 정작 현실에선 종종 믿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도 믿을 수 없게 되는 일들과 마주한다. 유치원 중복지원에 대해 불합격을 천명했던 서울교육청이 슬그머니 ‘합격취소 철회’라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이렇게 되면 학부모는, 교육 소비자는 더 이상 교육 당국을 믿기 어렵다. 이뿐인가. 관피아를 척결하겠다던 정부의 의지를 코웃음 치듯 올해 신규 선임된 금융권 사외이사 10명 중 4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산타가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그것이 배신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조금 더 세상에 다가가는 길이기도 하거니와 부모의 정성을 이해하는 수순이 된다.

하지만 어른들의 믿음은 다르다. 합리적 판단이 깨지는 순간 학습 효과는 오래 지속된다. ‘정부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돈 벌려는 수작이 별 수 있나’라는 식의 비관과 냉소가 퍼진다. 이것이 성탄절처럼 하루로 끝나는 것도 아니니 더 문제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