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5)유사졸업생들-「5·16」후의 5기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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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16군사혁명에 무력부대를 출동시켜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실질적 주역인 5기생들은 혁명성공 후 다수가 혁명정부 요직에 참여했다.
군사정부의 최고의결기구였던「국가재건최고회의」최고위원이 된 5기생은 ▲문재준대령 ▲박기석대령 ▲박춘식준장 ▲박치옥대령 ▲송찬호준장 등 6명이다. 30명(장성19명, 영광급11명)으로 구성된 최고회의에서 6명은 기별로는 최다수그룹. 5기와 함께 양대 주체세력인 8기는 1명이 적은 5명을 할당받아 ▲오치성대령 ▲길재호중령 ▲옥창호중령 ▲박원빈중령 ▲이석제중령이 자체투표에서 선출됐었다.
혁명군 주력부대를 지휘한 6군단포병사령관 문재준대령과 공수단장 박치옥대령, 야전군쪽에서 일찍부터 모의에 가담한 12사단장 박춘직준장, 5사단장 채명신준장, 고사포여단장 송지호준장, 2군공병참모 박기석대령은 자동케이스로 최고위원이 됐으나 누구 못지 않게 공이 컸던 6관구참모장김재춘대령은 빠졌다.
혁명주체 외에 군안에 신망이 높은 인사와 전문분야에 조예가 깊은 장교를 군별, 기별로 안배하다보니 빠지게 된 것인데 김대령은 나중 최고회의 1차개편 때 최고위원에 보선됐다. 주체로 참여했고 혁명이 성공한 5·16당일 혁명공약 전단을 항공기로 서울상공에 뿌리며 축하비행을 하게 했던 항공학교장 5기 이원엽대령과 공군의 박원석소장. 30사단장 박영석준장도 나중 최고위원이 됐다.
최고회의 구성 당시 5기생을 중심한 이북출신들은「최고」라는 명칭에 심한 반발을 했다고 한다. 김종필씨가 안을 가져와 설명을 했는데『하고 많은 이름중에 김일성이 많이 쓰는 「최고」를 붙였느냐』고 고함이 터졌다는 것. 박정희소장이 『시간이 급하니 따질 것은 나중에 따지고 내용부터 들어보자』고 말려 그만 그대로 넘어간 것이 「최고회의」「최고위원」으로 굳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5월18일 최고회의 구성 후 조직된 군사내각에는 5기생가운데 공병출신박기석최고위원이 건설장관, 통신분야에서 군안의 권위로 꼽혔던 배덕진준장(1군사통신참모)이 체신장관으로 입각했다. 육사졸업후 각 병과 창설 때 각각 공병과 통신으로 가 전문가가 된 두 분은 이를 계기로 나중 군에서 나와서도 폭 넓은 활동을 했다.
박대령은 그해 군복귀를 자원, 공병학교장으로 갔다가 준장으로 예편한 후 주택공사총재·국방부건설본부장·원호처장(65∼70년)·석유화학지원공단이사장·도로공사사장 등을 맡았다.
배덕진준장은 역시 그해 군에 돌아가 통신감(준장)을 끝으로 예편한 뒤 행정개혁조사위원회 부위원장·안보회의수석상임위원 겸 사무국장·동비상계획위원장·방직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정희대통령과 같이 만군출신인 박춘직최고위원도 그해 개각에서 교통장관으로 입각, 5기출신 장관은 모두 3명이 됐다. 박장군은 군에 복귀, 6관구사령관·육본관리참모부장·3군단장을 역임하고 퇴역한 뒤 삼화축산사장으로 일하다 79년 58세로 작고했다.
역시 만주군출신이며 5기생 가운데 가장 진급이 빨랐던 이룡장군은 보병학교장으로 있다가 강원지사로 발탁돼 군정에 참여했다. 군에 돌아가 65년1월 육본기획통제실장(소장)을 끝으로 예편했는데 이소장이 예편할 무렵 군안에 있던 5기생들이 대거예편했었다. 이소장은 예편 후 무임소장관 보좌관으로 일하다 교통차관을 거쳐 철도청장을 역임했다.
송요찬장군이 인천제철사장으로 있을 때 이장군은 부사장으로 있다가 송장군이 별세하자 사장직을 승계했다. 강직한 성품으로 동기들로부터『전형적인 군인』이란 평을 듣는 이장군은 현재 5기동기회 회장도 맡고 있다.
이장군이 강원지사로 나갈 때 강완채·박창원장군(당시는 대령) 등 5기도 각각 대구시장·경기지사로 파견됐었다. 두 분은 모두 행정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평북 정주출신으로 평양숭인상고를 나와 일제말 고향 금융조합에 근무한 일이 있는 강장군은 친구가 학병으로 나가자 친구의 부모를 자주 문안하는 등 친부모처럼 모셔 인근에서「의리의 청년」으로 칭송이 자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번 인사를 나눈 사람의 성명을 잊지 않고 동료·상사·부하들의 길·흉사에는 앞장서 나서는 성품으로 동기생인 채명신사령관 밑에서 주월사작전부사령관을 역임했었다.
75년 소장으로 예편한 뒤 대우그룹에 초빙돼 대우중공업부사장·대우정밀사장으로 현재도 일하고 있다. 지난해 환갑을 지냈는데 요즘도 아침7시면 출근하는 정력적인 활동을 한다고 들었다.
박창원장군은 육사부교장으로 예편한 뒤 유신고속·아주대학을 설립, 경영하다 현재는 유신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한국기독장교회총회장직도 맡고있다.
5기생가운데 최택원장군이 67년 소장예편 후 안보회의상임위원·감사위원을 거쳐 총무처차관을 역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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