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7세 소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부산 세 어린이 살해범이 이웃의 17세 소년으로 밝혀졌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해서 매일같이 범죄가 끊일 날이 없고 그 범죄수법도 그저 단순하고 평범한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번 사건도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닌 듯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그 사건을 앞에 놓고 생각해 보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 심각성의 첫째는 무지스런 잔혹이란 점이다.
그것은 물론 피살된 주체가 모두 자기 방어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이란 점에서 뿐만이 아니다.
가해자는 범행계획을 미리 세우고 나서 그 계획에 따라 어린이들을 목 졸라 실신시킨 뒤 칼로 무수히 질러 숨지게 하고 있다. 방어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에 대해 무지스럽게 가해한 자체뿐 아니라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인간적인 만행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사회의 도덕적 타락의 일면을 반증하는 증거로서 두렵기 그지없다.
둘째로 범행이 이웃에 의해 저질러진 사실이다.
범인과 어린이들은 이웃에 사는 관계로 낯을 익히고 있고 또 자연스럽게 집에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한 관계였다고 한다.
그런「알고 지내는 사이」의 친밀성이 범행목적의 장애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범행의 대상으로 선정되고 있다는 사실의 냉혹성이다.
흔히 전통적인 사람의 도리는 가까운 사람을 먼 사람보다도 더 친절하게, 더 두텁게 대하는 것이 원칙이다. 유가의 윤리로 보면 제일 가까운 부모, 자식관계로부터 가족, 혈족관계와 동료, 이웃의 관계가 친소에 따라 상응한 예절과 정의로써 맺어져야 한다.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는 이웃은 비록 천륜관계의 가족은 아니라도 특별한 인륜에 의해 맺어진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그 인륜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건만 이 사건으로「아는 사람」이나「이웃」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풍속과 정리는 실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인연에도 악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나 비극적이고 불행한 인간관계가 우리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악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셋째는 범인이 미성년의 17세 소년이란 사실이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 청소년범죄가 흉악화, 잔혹 화하고 있는 현상은 반드시 우리사회만에 한정되지 않은 세계적 현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청소년범죄의 흉포화가 우리사회에서 이처럼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선 슬픔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청소년범죄의 잔혹화, 흉포화의 온상으로서 여러 가지 조건을 충분히 구비한 처지에 빠져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다.
어른사회의 비리가 미성년인 청소년의 사행을 키우며 조장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히 범행을 저지른 17세 소년의 불우한 주위환경을 둘러봐도 넉넉히 감지할 수 있다.
단지 가난한 가정형편만을 문제로 보자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불구라서 일을 못하고 어머니가 전세점포에서 술장사로 생계를 꾸려야하는 가정환경에서 올바른 가정교육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가정을 둘러싼 그의 성장환경이 나빴다는 것도 짐작이 간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소년이 2년 재수의 고교낙방 생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대학 재수생 문제만이 아니고 고교재수생의 문제가 사실은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실증으로서 우리사회 문제의 일면을 제시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자의 진학과 취업문제 해결에 대한 사화의 보다 큰 관심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 17세 소년의 잔혹한 범죄를 보면서 누구라도 몸을 떨고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살해를 당한 세 어린이의 비운도 그렇거니와 어린 나이에 그런 범죄를 저지른 이 철부지 소년의 무모한 살의와 잔학한 범행에서도 역시 그런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일이 그처럼 어렵고 학교와 사회가 올바른 성인을 만들어 내는 일이 그처럼 힘든다는 생각도 든다.
새삼 우리사회 모든 성인들이 진지하게 우리의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우리를 본받을 어린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장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