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이버 전면전에 청와대가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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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3일 북한의 인터넷이 10여 시간 동안 완전히 다운됐다가 복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사태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소니픽처스 해킹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규정하고 ‘상응조치’를 언급한 직후 시작됐다는 점에서 미국의 사이버 공격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물론 은밀함이 생명인 사이버 전쟁의 특성상 전모가 밝혀지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추론을 해 보면 이미 사이버 전쟁이 현실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 여기에다 어제 한국수력원자력을 해킹한 해커집단은 다섯 번째로 원전자료를 인터넷에 유출했다. 원전 해킹은 북한 개입이 의심된다는 점에서 사이버 전쟁 대비태세가 우리 안보의 새로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버 전쟁은 선전포고나 사전 경고 없이 산업망·통신망·전력망·에너지공급망·교통망·금융망 등 인간 생존에 필요한 핵심 시설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핵전쟁보다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이 김정은 시대 들어 저비용이 특징인 사이버 전력을 핵과 탄도미사일에 이은 새로운 주요 비대칭 전력의 하나로 키우면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2012년 8월 김정은의 지시로 ‘전략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하고 사이버 전담 병력을 두 배인 6000명 정도로 대폭 늘렸다. 현재 세계 3위 수준이다.

 미국은 2008년 외국 정보기관에 의한 군 전산망 해킹을 계기로 2009년 전략사령부 산하에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하고 전력을 강화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한 한국의 대비태세는 어떤가. 정부는 북한의 사이버 공격을 겪은 뒤인 2013년 7월 청와대를 컨트롤타워로 하는 대응체제 구축 등의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비책을 내놓지 못했으며 이에 따른 조직적인 연습·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사이버 공격 또는 테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대응체계 구축, 사이버 테러나 전쟁의 사전 탐지 및 사이버 위기 조기 차단 등 사이버 안전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 사이버 안보 관련 법안조차 아직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 훈령인 ‘국가사이버안전관리규정’이 이를 대신할 뿐이다. 국회는 현재 2개가 계류 중인 국가 사이버 안보법안을 조속히 논의해 통과시켜야 한다. 국가 기반시설인 원전이 해킹을 당해도 속수무책인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더 이상 국방부나 국가정보원, 미래창조과학부 차원에서 사이버 전쟁에 대처하는 단계는 지났다. 이미 공표한 종합대책에 따라 청와대가 직접 컨트롤타워가 돼 지휘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 사회의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인력, 노하우를 총결집해 전면전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민방위훈련에 사이버 전쟁 대비훈련을 넣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사이버 전쟁에 맞서 동맹국들과 연합전선 구축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사이버 ‘보안’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