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전시] 언제 봐도 푸근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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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 세 마리를 그린 19세기‘호자도(虎子圖)’. 세밀한 선을 써서 부드러운 느낌이 진하다. 동심원으로 묘사한 눈이 익살스럽다.

반갑다! 우리 민화
10월 30일까지 서울 새문안길 서울역사박물관 02-724-0114

분명 호랑이인데 머리가 허옇게 센 파파 할머니로 다가온다. 헤벌린 입 속에는 이가 몇 개 안 남아 쪼그랑 할멈처럼 보인다. 관람객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손자뻘 호랑이는 팽글팽글 도는 눈 모양새가 한집안 식구처럼 닮았다. 제목은 '호자도(虎子圖)'이지만 호랑이 가족이 아니라 사람 가족이다. 해학이 넘친다.

보는 이를 빙그레 웃게 하는 이 그림은 일본으로 흘러갔다가 돌아온 우리 민화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일본에 건너간 민화 104점에 국내에 남은 16점을 보탠 120점이 나왔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이'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일본의 민예관과 1년 넘게 정성을 기울인 기획에는 민화만큼 아름다운 사연이 숨어있다. 조선 도자기에 반한 뒤 민중적 공예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달은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가 주인공이다. 전시작의 반 이상이 그가 수집한 민예관의 소장품이다. 야나기는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입되는 그림을 민화라 하자"고 정의했다.

꽃과 풀벌레 등을 그린 '화조화', 호랑이와 까치를 어우러지게 한 '호작도', 명승지를 소재 삼은 '산수화', 글자를 그림처럼 장식한 '문자도', 옛 이야기를 꾸민 '고사인물화', 책더미와 문방구를 구경거리로 만든 '책가도'순으로 정리한 전시장은 알뜰하고 소담스럽다. 한 점 한 점 발길이 머물 때마다 눈이 즐겁고 마음이 쾌해진다. 현대 회화 저리 가랄 정도로 추상성과 색채감각 등이 빼어난 작품 앞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조선의 이름 모를 화공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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