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⑧기술진보] 71. IT 한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올해 5월 열린 ‘서울 디지털 포럼’에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한국의 유비쿼터스는 금속인쇄술에 이어 전 세계가 두 번째로 한국에 크게 신세지는 통신 부문의 혁명적 성과”라고 극찬했다. 세계 정보통신 부문을 주도하는 한국의 위상을 확인해 주는 말이다. IT 제품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막론하고 ‘한국에서 실패하면 세계 시장에 내놓으나마나’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통하고 있을 정도다. 세계 ‘IT 테스트 마켓’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래픽 크게 보기> ... 이미지크기 353KB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뒤떨어진 정보통신 후진국에서 가장 빨리 정보통신 선진국으로 올라선 국가로 꼽힌다. 이동전화·인터넷·디지털TV 방송을 비롯, 언제 어디서나 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등 정보통신을 주도하는 주요 분야에서 세계를 앞서가고 있다. 일반 전화 한 대를 놓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야했던 1970~80년대를 뒤로 하고,이제 상당수의 가정이 일반전화와 휴대전화를 합해 서너 대를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됐다. 내년 상반기에는 세계 최초로 3.5세대 이동통신 방식인고속하향패킷접속(HSDPA) 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가 시작된다.

1.2기가바이트 용량의 영화 한 편을 휴대전화로 내려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여 분. 위성 DMB(디지털 멀티미디어방송)서비스로 ‘내 손안의 TV’가 생긴 데 이어, 내년에는 ‘내 손안의 극장’을 갖게 된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앞당길 무선 휴대 인터넷(와이브로)도 내년 초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된다.인구의 77.4%(3740만 명)가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있고 71.9%(3257만 명)가 인터넷에 접속돼 있다. 경제 활동 인구 대부분이 휴대전화기와 인터넷을 이용하는 셈이다. 한국은 그야말로 ‘정보통신 강국’이다. 지난 40여 년에 걸친 피나는 노력과 눈물의 결실이다.

◇부동산 투기를 방불한 전화 투기 = 6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전화기는 투기의 대상이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데 따른 기현상이었다. 당시 중앙일보 지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도시생활의 필수품인 전화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고리대금ㆍ무단임대ㆍ매점매석 등의 부조리 제거 작업이 6월부터 실시되고 있다. (중략) 현재 전국의 전화 상(商)은 600여 개소로 이중 400여 개소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이들 전화상은 고물상 영업허가를 받아 전화매매는 물론 전화를 담보로 한 고리대금업까지 해왔는데, 당국의 추산으로는 서울 시내에서만 전화를 담보로 한 자금이 100억원대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75년 6월 5일자)
80년 서울 시내 요지의 백색전화 가격은 200만원을 호가하면서 중소 도시의 웬만한 집 한 채 값을 웃돌았다. 백색전화는 매매가 금지된 청색전화와 달리 명의 이전이 가능한 전화.

정부는 전화 기근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과 스웨덴ㆍ독일 등에서 교환기를 들여왔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통신 독립 첫발 내디딘 TDX 개발 = 정부는 81년 10월 전(全)전자 교환기(TDX) 개발로 만성적인 전화 적체 현상을 해소하기로 결정했다. 전화 도입 80여 년 만에 통신 독립을 결심한 것이다. 개발 비용은 240억원. 대규모 공장 하나 짓는 데 50억원이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장으로 있던 서정욱 박사(전 과기부 장관)가 한국통신(현 KT)의 TDX 개발단장에 임명되면서 TDX 개발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서 단장은 “기술 개발만이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며 기술진을 독려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제품인 TDX-1은 86년 3월 첫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화 보급 80여 년 만에 우리 손으로 만든 교환기로 통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TDX-1의 위력은 대단했다. 상용 서비스 1년 반 만인 87년 9월 30일 전국 전화 회선은 1000만 회선을 돌파하며 ‘1가구 1 전화 시대’를 열었다. 또 TDX 개발은 국내 정보기술 산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TDX 개발과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의 주역이었던 이성재 RX윈도 사장(당시 한국통신 부장)은 “TDX 개발 경험이 없었다면 CDMA 상용화를 달성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TDX 기술을 이용해 CDMA 교환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가지 않는 길’ CDMA로 가다 = 지난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정보통신 전시회 ‘세빗(CeBIT)’에서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5세대 이동통신 방식인 HSDPA 장비를 선보였다. 11년 전인 84년 5월 한국이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국산 장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모토로라가 만든 차량용 이동전화는 300만원이었다. 여기에 설치비와 채권 등을 합치면 포니2 자동차 가격과 같은 400만원이 들었다.

80년대 경제 성장과 함께 이동전화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92년 정부는 디지털 이동통신을 도입키로 하고, 기술표준으로 93년 CDMA를 선택했다. 당시 CDMA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했었다. CDMA 개발과정을 총괄한 서정욱 CDMA 기술개발 사업관리단장은 회고록에서 “번번이 극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나의 입장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종종 되새기게 했다”고 썼다. 밤을 낮 삼아 개발에 매진한 덕에 CDMA 휴대전화기도 교환기와 함께 개발됐다.

CDMA 개발과정에서 국내 이동통신 업체는 물론 삼성전자ㆍLG전자 등 장비 제조업체들의 기술력은 일취월장했다.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ㆍ일본 업체보다 앞선 기술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강국 = 해외 언론들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보도했다. 노 후보 진영은 다른 후보가 거들떠보지 않은 사이버 공간을 공략했다. 그 결과 20대와 30대 투표율이 높았고, 이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연결됐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가장 높다. 여기에는 98년 당시 정통부 장관이었던 배순훈 한국과학기술원 초빙교수의 결정이 크게 기여했다.

98년 당시 배 장관은 ADSL (비대칭 디지털 가입자 회선)방식을 초고속 인터넷 표준으로 채택했다. 일본과 독일 등은 ISDN 방식을 표준으로 채택해 사용하고 있을 때였다. ADSL(종합 정보통신망)기술은 미국에서 개발됐지만, 가구 간의 거리가 먼 미국에서는 상용화되지 못했다. 전화국 반경 5㎞만 벗어나도 통신 속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치명적이었다.

당시 배 장관은 “우리는 전화국 반경 5㎞ 내에 대부분 수용자가 포진해 있어 문제가 없다”며 “10년 후 광케이블(FTTH)로 넘어갈 때까지는 ADSL로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결정 덕분에 한국은 ISDN을 선택한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인터넷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희성 기자

개똥녀…X파일…7악마…
인터넷 한국의 그림자

▶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 ‘개똥녀’로 비난받은 여성(왼쪽).

미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7월 7일자에는 한국의 ‘개똥녀’가 등장했다. 개똥녀 사건은 지난 6월 한 여성이 지하철 안에서 애완견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리자 승객들이 이를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네티즌들이 그를 ‘개똥녀’라고 비난하면서 시작됐다. 신문은 “‘개똥녀’(Dog Poop Girl) 사건은 인터넷의 힘과 함께 ‘해결되지 않은 미래의 한구석’을 엿보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똥녀는 수십개국의 언어로 제공되는 유명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어(www.wikipedia.org)’에도 이름이 올랐다. 개똥녀,연예인 X파일, 7악마 사건 등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사이버 폭력은 세계 최고 인터넷 강국 한국의 뒷모습에 드리워진 그늘이다.

연예인 X파일 사건은 올해 초 연예인들의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이 보고서 형태로 정리돼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 유통된 사건을 말한다. 7악마 사건은 학교 친구 7명으로부터 도둑 누명을 쓴 한 여고생이 자살하면서 비롯됐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따르면 지난 4∼6월 경찰에 단속된 사이버 폭력사범은 322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949명)보다 63.3% 늘어났다. 인터넷을 이용한 신종 금융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인터넷에서 개인정보를 빼내 인터넷뱅킹으로 5000만원이 인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가짜 은행 사이트를 만든 뒤 접속한 이용자들의 PC에 원격조종 프로그램을 심어 개인정보를 빼낸 당사자가 고교생으로 밝혀져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이규희 사무총장은 “타인에 대한 배려의식이 부족한 한국적 상황에서 사이버 테러가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을 네티즌들이 가지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IT 벤처갑부5人

인테넷은 기회의 땅이 됐다. 수많은 갑부가 탄생했는가 하면 침몰하기도 했다. 인터넷 갑부 1위는 온라인 게임‘바람의 나라’를 개발한 넥스㈜의 김정주 사장이 꼽혔다. NHN의 이해진 부사장,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의장 등이 낮익은 벤처 갑부들이다.

*포브스코리아 지난 7월호가 조사한 ‘한국의 벤처 갑부 50인’ 중 인터넷 관련 갑부 10명.(순위는 벤처 갑부 50명 기준)
*재산은 3월 말 평가액

최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