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결렬 몰지 말고 합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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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정치부 기자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영수회담을 여덟 번이나 열었다. 이를 두고 이 총재와 사이가 나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나는 박정희 정권과 18년을 싸우면서 영수회담을 단 한 번 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국가 대사를 협의하려고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두 사람이 여덟 번이나 만나면서 국민에게 아무런 위안과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만날 때마다 상생과 협력을 내걸었지만 회담 뒤엔 으레 "차라리 안 만나는 게 좋았다"는 볼멘소리가 양측에서 터져나왔다. 서로 자기 얘기만 늘어놓고 상대방의 주장엔 귀를 닫았기 때문이다. 보스들이 만나서 정국을 더 망가뜨리고 국민의 정치 불신만 높여놨던 셈이다.

7일 열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영수회담도 현재로선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최대 쟁점인 연정 문제에 관한 한 두 사람의 인식 차는 거의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제 와서 상대방에게 설복돼 입장을 바꾼다는 건 정치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배석자도 양측에서 3명씩이나 나오니 속 깊은 얘기가 오가기도 어려운 분위기다.

그러나 유능한 정치지도자라면 이런 상황일수록 역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의 만남에 쏠린 국민적 기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나라당이 홈페이지에 마련한 '영수회담 주문 코너'엔 이번 기회에 민생고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아우성이 쇄도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박 대표는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주장만 되풀이하며 회담을 예정된 결렬로 몰고갈 게 아니라 합의할 수 있는 의제에 대화를 집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부동산 문제, 남북 관계, 교육 문제, 저출산 대책 등 시급하면서도 두 사람이 합의 가능한 의제는 얼마든지 있다. 영수회담을 한쪽의 이득이 다른 쪽의 손해가 되는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잘만하면 대통령과 야당 대표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는 윈윈 게임도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을 하기 바란다. 이날 오후엔 영수회담이 뜻깊은 성과를 거뒀다는 9회 말 역전홈런 같은 기사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정하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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