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밥보다 더 큰 슬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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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밥보다 더 큰 슬픔 이수익 (1942 ~ )

크낙하게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

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일이,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밥을 씹어야 하는 저 생의 본능이,

상주에게도, 중환자에게도, 또는 그 가족에게도

밥덩이보다 더 큰 슬픔이 우리에게 어디 있느냐고.


상주가 되어도 중환자 보호자가 되어도 때가 되면 밥은 먹어야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국에 말아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야 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재래식 화장장 굴뚝으로 뭉클뭉클 치솟아 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고 "호승아, 저 연기 잡아라!" 소리치며 내 어머니는 쓰러지셨지만, 나는 소나무 그늘진 곳으로 어머니를 옮겨놓고 쇠고기 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막걸리도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켰다. 불행이 찾아왔을 때나 비극을 견디지 못할 때나 사람들은 무슨 잔치라도 벌인 듯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다. 그리고 때로는 술 취해 생각한다. '어리석은 자는 항상 삶 다음에 죽음이 오지만, 현명한 자는 죽음 다음에 삶이 온다'는 말, 그 말 정말 맞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떨군다. 도무지 모르겠다고.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슬픔은 잔치이며, 잔치 국수를 나눠 먹는 일이라는 것밖에 없다고.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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