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의 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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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본인은 공직자로서 긍지와 보람을 갖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신명을 바칠 것을 선서합니다』
재작년 말부터 공무원들의 집무실 가장 잘 보이는 벽에 걸려 있는 액자의 첫 구절이다. 마지막에는 직책과 자필서명까지 들어있어 결코 장식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엊그제까지 철도청장으로 행세하던 고급관리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다. 『굶어 죽는 것이 영광』 (김병노 초대대법원장의 퇴임사)이라던 사법부는 대법원장의 비서관이 사건브로커 노릇을 하다 구속되어 정초부터 초상집 분위기다.
청백리에 반대되는 장리·오리의 추문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물론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청백리를 뽑아 역사에 남겨 칭송하는 반면 탐관오리가 적발되면 엄벌을 가했고 그를 추천한 사람까지도 삭탈 관직했다. 자손은 행정관서에 등용을 금했고 과거시험도 탐관오리의 아들은 문과나 생원시 진사과에 응시를 못하도록 엄격히 제한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에 대한 공복으로서 공직자의 임무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80년12월「공무원 윤리헌장」을 선포하고 청백리 상을 마련해 놓고있다.
61년에는 「공무원의 윤리강령」, 69년에는 「공무원의 신조」등을 각각 재정 했었으나 우이독경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58년)이나 자유중국(72년) 도 비슷한 것을 갖추고 있으니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공무원의 빈직은 골칫거리인 모양이다.
대검 중앙수사 부의 조사 실이 있는 검찰청사 15층은 이수사가 진행되는 열흘 동안 밤낮없이 불이 켜졌고 주변에서는 청장의 숨긴 재산이 「10억」 「2O억」이란 소문도 파다했다.
동시에 역시 차관급인 모 부처의 청장도 비슷한 혐의를 두고 국장과 함께 검찰에 불려 다녀 보도진들을 긴장시켰다.
당당하던 나으리들의 자세는 간데 없고 하나같이 목을 움츠리고 어깨를 늘어뜨린 초췌한 모습들이었다. 민원인을 민원인으로 만든 장본인들의 참모습이었다.
어떤 학자는 우리 나라의 관존 사상 때문에 특히 공직을 입신양명이나 치부의 지름길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청렴해야 백성이 따르고 충성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공무원 윤리헌장」에는 『이 생명은 오직 나라를 위하여 있고 이 몸은 영원히 겨레 위해 봉사한다』는 문장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든 공직자들이 한번쯤 재음미해 볼만한 것들이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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