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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일 측의 구체적 행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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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까소네」수상의 방한으로 2년여를 끌어오던 한일 경협 문제가 타결되고 한일 양국은 호혜평등의 새로운 동반자시대를 다짐했다, 2차례에 걸친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을 토대로 양국 관계의 오늘과 내일을 관계전문가의 대담으로 들어본다.
▲길승흠 교수= 「나까소네」(중수근강홍)수상이 일본수상으로서 처음으로 공식 방한하여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가진 것도 큰 뜻이었습니다만, 12개항의 공동성명을 보니 격에 맞는 알찬 회담이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공동성명을 중심으로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분석해 보기로 합시다.
▲박웅서 박사=40억 달러 경협 문제의 타결을 가장 큰 구체적 성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 보다는 일본수상이 왔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길=물론입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공동성명 중 제4항의 한반도에 있어서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긴요하다는 것과 「나까소네」수상이 전두환 대통령의 대북 제의를 지지하고 한국의 방위노력을 평가한 것이 주목됩니다. 그러나 문맥만으로 말하면 76년「포드」-「미끼」정상회담 후 나온 이른바 신 한국조항의 수준이죠. 거기다가 한반도에 긴장이 상존한다는 인식이 「준엄한 정세」로만 표현되었더군요.
▲박=그렇지만 그때와는 국제환경이 많이 달라졌죠.
▲길=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요즘 이른바 신 냉전체제가 깊어짐에 따라 한미안보협력은 더욱 긴밀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일관계도 돈독히 될 수 있는 분위기는 조성 됐지만 「스즈끼」 (영목)수상 때는 「소노다」 (원전)· 「이또」 (이동) 등 소위 자민당 내 좌파인사들이 외상에 앉아 있어 전전이 없었지요. 스즈끼」수상은 신 냉전체제에 대한 인식을 우리와 같이 했습니다만, 외상들이 반대했었죠.
▲박= 「나까소네」 수상과 「아베」(안배)외상은 그런 면에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길=일본정부의 시각변화에 우리가 타이밍을 잘 맞추었습니다. 「나까소네」수상이 그런 인식을 대외에 천명함으로써 남북대화 실현, 교차승인, 유엔동시가입 등 80년대 우리와 교목표의 결실에 도움이 되리라봅니다.
▲박=성명 제6항 중 전대통령의 태평양정상회담 제의에 대해 「나까소네」수상이「사의」를 표명했는데, 그것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상당히 외교적 표현이더군요.
▲길=태평양국가간의 협조문제는 환 태평양 구상이니 뭐니 해서 「오오히라」(대평)수상 때부터 일본이 추진했던 과제였었죠. 그때는 뉴질랜드·주주 등의 반응이 좋았던 반면 아세안국가들이 냉담했죠. 그러나 전대통령의 제의에 대해서는 아세안국가들의 반응이 좋거든요. 일본이 마음만 있으면 지금이 손잡고 추진하기가 가장 좋은 때지요.
▲박=제5항에서 『일본이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과 아시아제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얼핏 새로운 자세를 약속한 것 같기도 한데….
▲길=동북아에서의 힘의 공백을 두려워했겠죠. 소련의 팽창정책과 미국의 후퇴 정책사이에서 일본이 위협을 느끼고 있는 증좌입니다. 사실 일본은 「레이건」 대통령 등장 이후 미국과의 동맹정책을 부쩍 강화해왔습니다. 이른바「안보무임승차론」의 국제적 비난도 이미 이겨낼 수 있는 수위를 지났습니다.
▲박=저는 일본이 국력에 상응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세계가 지켜봐야 할 일본의 과제라고 봅니다. 대 개도국 원조인 일본의 ODA자금만 해도 일본의 국력에 비하면 유치할 정도입니다. 또 일본은 세계경제질서를 얼마나 교란했습니까. 일본은 한국·대만 등 아시아국가들과는 물론, 세계곳곳에서 무역시장의 긴장관계를 조성했습니다. 컬러TV만 해도 우리가 선진국 시장에 파고들었을 때 이미 일본이 시장 질서를 교란해 버린 후라 쿼터 제가 실시돼버렸습니다.
▲길=앞으로 일본의 구체적 행동표시가 더 중요하겠군요. 대한무역역조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귀절(제7항)도 짚어봐야죠.
▲박=무역역조· 산업기술 협력 문제는 경협 못지 않게 양국 경제관계의 특징을 대변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82년에 우리의 대일 무역 수지적자가 줄었다고 합니다만, 전체무역적자 40억 달러 중 17억 달러를 차지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산업기술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만큼 전자산업 등은 공동개발하고 여타생산기술도 빠른 속도로 이전해 와혜적 질서를 확립해야 합니다.
▲길=경협 40억 달러 타결은 제5공화국의 새 정부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공화당 정권은 76년부터 대한 경협의 방향을 정부베이스에서 민간베이스로 바꾸기로 했으니까 구정권이었다면 요구조차 어려웠을 것입니다.
▲박=일본의 수출지향적 산업구조가 재편되지 않는 한 양국무역수지 개선은 순탄치 않을 겁니다. 일본은 국내시장규모에 비해 훨씬 큰 산업능력을 갖고있고 이것이 곧 국제무역질서에 구조적 문제가 되고있습니다.
▲길=한미·미일의 기존 우호협력관계에다 한일의 새로운 협력관계구축으로 자연히 한·미·일의 삼각우호협력관계도 강화되게 마련이죠.
▲박=이제 일본도 남북한 등거리외교니 뭐니 하면서 이른바 북한카드 같은 것은 덜 써야 할겁니다.
▲길=일본의 북한카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일본이 등거리니, 전방위외교니 하여『남북한관계에 중계역할을 하겠다』 고 하면 우리는 무조건 『간섭 말라』 고 반발했습니다. 이제는 『하려면 해 보라』는 정도로 유연해졌죠. 오히려 그것이 교차승인·유엔동시가입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보이는데요.
다만 자민당의 표밭인 일본서부지방의 어민과 아아연 등 자민당 내에 좌파인사가 존재하고있고 일본이 북한에서 받을 부채 (8백억 엔) 가 있는 한 일본의 대북한 정책 전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박=82년도분부터 7년간 들어올 40억 달러 경협은 5차5개년 계획의 개발용 장기차관의 4분의1 정도를 차지,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형편에 비추어 우리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세계은행공여의 개발차관처럼 장기저리인데다가 특정사업에 묶이지 않은 언타이드 론이어서 우리가 필요할 매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가 있지요.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려는 국민경제의 경기자극에도 당장 크게 기여할 것이 분명합니다.
▲길=경협과 관련, 물론「바이·저팬」정책(일본상품구매정책)의 적용은 안 받겠지만 차관 도입으로 무역역조현상은 더 심화되지 않을까요.
▲박=자연히 일본물건이 들어오겠죠.
그렇지만 우리도 일본에 심한 무역역조현상이 장기적으로 그들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등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원자재를 가능한 국내에서 생산하는 등 무역역조를 줄이는 자조노력을 강화해야죠.
▲길=산업기술협력의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내용도 매우 의의 깊은 걸로 평가되지요.
▲박=그렇습니다. 섬유산업만 보더라도 평면적으로 생각할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작년에 이미 대미수출고에서 한·중공간에는 어느새 10억 달러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장치산업에서 대만이나 홍콩보다는 집중 투자했으므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내의 분업에서 다각적인 협력이 모색될 수 있을 겁니다.
양쪽의 시장규모, 원재료수급, 기술수준 등을 감안, 어떤 것은 우리가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은 저쪽에서, 또 어떤 것은 생산과 조립을 반대로 하는 등 말입니다.
▲길=국민적 기반에 입각한 교류의 확대가 양국 선린관계에 중요하다는 인식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국교정상화 후 양국지도자간에는 교류가 있었으나 양국 국민들 사이에는 서로가 가장 싫어하는 상대로 봐왔어요.
따라서 양국지도자가 이제는 국민적 관계가 개선 안 되면 한일관계가 어려울 것이라고 느낀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지난번에 문제된 문제의 교과서도 양 국민이 상호이해를 넓혀 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기술돼야 합니다.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사과한다는 「나까소네」수상의 발언이 좀 소극적이었다는 점입니다.
▲박=그랬더라면 돈독한 양국관계를 위해 한층 나아지겠지요.
그리고 일본은 현재 차등 대우를 받고 있는 제일교포들에게 일본인보다 더 혜택을 주는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길=양국의 직통전화개설은 긴급히 논의해야할 사항이 많은 가까운 나라라는 점도 확인하는 것이지만 항상 대화의 채널을 트고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임한다는 자세의 천명이라는 점에서 양국관계의 상징적인 발전의 한 증거로 보고 싶습니다. <정리=전육·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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