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에 찢긴 미국] 연방 - 주정부 '재난 책임'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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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4일 워싱턴에 있는 미 적십자사 본부를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 미군 군용헬기가 4일 뉴올리언스의 무너진 제방을 보수하기 위해 대형 모래주머니를 내려놓고 있다.[뉴올리언스 AP=뉴시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비가 미흡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지만 비판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론은 연일 부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5일 "카트리나는 제2의 9.11"이라며 재난 극복 여부가 부시의 남은 임기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국면 전환 쉽지 않을 것"=워싱턴포스트는 "부시 행정부 1기 때의 최대 재앙은 9.11 테러이며, 2기의 재앙은 카트리나"라며 "그러나 카트리나의 경우 부시가 지목할 적(敵)이 없어 국면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9.11의 경우 부시는 여론을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적의 타도에 집중시켰지만 카트리나는 자연현상일 뿐이어서 부시가 오히려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시 스스로 재난을 극복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에 지도력 회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 연방과 주(州) 정부의 갈등=워싱턴포스트는 "연방정부가 뉴올리언스 주민을 소개하는 권한을 루이지애나 주 정부로부터 접수하려 했으나 주 정부는 이를 재난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의도로 보고 거부했다"고 전했다.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 장관은 "연방정부의 구호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한 것은 구호의 1차적 권한을 주 정부에 부여한 헌법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안보부에 대해선 "410억 달러의 예산을 쓰면서도 방재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2003년 국토안보부에 흡수되면서 재난 경고 기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FEMA 책임자인 마이클 브라운은 "(카트리나 상륙 사흘 뒤인) 1일까지 뉴올리언스 컨벤션센터에 1만5000여 명의 이재민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 "부시 곁엔 애완견만 있었다"=시사주간지 타임은 4일 인터넷에 올린 최신호(12일자)에서 카트리나에 대한 백악관의 대응이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타임은 "카트리나가 미국 멕시코만 일대를 강타할 것이라고 예고됐는데도 부시의 'A팀', 즉 딕 체니 부통령과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 등 핵심 측근들은 한가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며 "백악관은 매우 매우 느리다"고 꼬집었다. "부시 대통령이 크로퍼드 목장에서의 휴가를 단축하고 백악관으로 돌아갔을 때 수행한 건 애완견 바니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 "부시, 둑 붕괴 가능성 들었다"=뉴스위크 최신호는 대형 참사를 부른 뉴올리언스 둑 붕괴와 관련해 "지난해 존 브룩스 전 상원의원이 부시 대통령을 만나 둑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둑이 무너질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부시의 말이 거짓이라고 지적이다.

뉴스위크는 "부시는 카트리나 강타 이후 나흘 만에 피해지역을 찾은 반면 아버지 부시는 1992년 허리케인 앤드루가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갔을 때 불과 수시간 만에 피해지역을 방문했다"며 부자(父子)의 차이를 비교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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