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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중앙문예」소설 가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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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젠 됐다. 명희는 손에 쥐고 있던 불꽃을 털어 불꽃을 털어 창 밖으로 던졌다. 그것은 불티가 되어 짧은 원호로 떠올랐다가 거의 수직으로 사라졌다.
파란 불점이 맺히면서 어둠 속에 매몰됐던 사물들은 본래의 결정으로 되돌아 오기 시작했다. 대신 앙금처림 가라앉았던 어둠의 입자들이 서서히 벽 뒤로 숨었다.
가스등을 싸안고 생긴 빛무리가 원형의 등피를 떠받치고 있었다.
불티를 버리는 일은 꼭 확인해야 하는 사항 중의 하나였다. 처음엔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여 창 턱에 걸렸고, 이것이 거의 습관화되었을 무렵 유리창을 닫은 채로 그냥 던져 버리는 실수가 잦아 불을 낼 뻔한 적도 있었다.
새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방에는 진한고요가 괸다. 좁은 방일수록 고요의 농도는 극심하다.
불을 잠시 꺼 둔 동안 새들은 일제히 노래를 멈췄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는 노래할 이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빛을 제하면 새들은 숨을 죽여 호롱호롱 둥지로 숨었다. 가스등 불빛에 잠을 깨어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없었다.
명희는 작은 불꽃에 드러난 사물들이 제각기 제 그림자에 기대어 꿈틀거리는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창틀을 넘을 때마다 방바닥에 세워둔 가스등을 축으로 모든 물상들이 살아 움직여 꼭두각시 놀음을 했다.
물컵이며 앉은뱅이 의자며 꽃병 속에서 시든 해바라기 잎사귀 조차 방바닥 또는 벽 위에서 서로 얼굴을 비볐다.
새들이 시끄럽게 굴지 않는 한 명희는 시간의 앞과 뒤를 잇는 단층 속에서 화석처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좁은 달팽이관을 따라 들어와 날개를 접는 미세한 음향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으므로 그녀에게는 적요가 필요했다. 적요속에 있으면 어디서나 쉽게 할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난 에미를 믿지 않는다.
할머닌 누굴 졜 믿으세요?
졜이고 뭐고 없어. 난 아무도 믿지 못하니까.
어둠속에 있으면 늘 할머니 냄새가 났다. 냄새라기 보다는 음향이 되어 귓 속 깊이 박혀 있었다. 어둠은 특히 주름 깊은 할머니의 얼굴에 수심을 더했다.
난 에미를 싫어 했어. 애비가 내 말을 듣지 않고 우길 때부터 그랬다. 넌 다행히 에밀 닮진 않았어. 그렇지만 않았어도 이 할미 품에 기를 생각은 없었을게야.
할머니는 끝까지 엄마에 대한 증오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희는 할머니로부터 쏟아진 나쁜 기억을 엄마의 형상으로 삼고 싶진 않았다.
할머니를 어쩌다가 혼자 있게 할 경우 명희는 곧잘 신경이 곤두서는 말을 듣곤 했다. 꾸지람을 위해서 할머니가 동원하는 말의 첫마디는 항상 에미라는 단어였다.
에밀 봤다. 꿈 속이지만 네 애밀 똑똑히 봤어. 거리였는데 내가 에미야 에미야 하고 부르는 소릴 듣고도 키큰사내하고 얘기만 하고 있더라.
미안해요 할머니. 아무래도 난 엄말 닮았나봐. 그쵸?
아니다. 넌 애빌 빼박았어.
이제 그만 하세요. 나 피곤해요. 할머니, 새장 좀 마루로 치워줘요. 자야해.
알았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속에는 엄마에의 증오심을 달리한 지나친 편애가 들어 있었다. 그것으로써 명희와의 사이에 얽혀 있는 감정이 주체되었다. 모든게 일방 통행으로 할머니의 기억과 경험을 묶었다. 단 한번의 칼질로 마무리를 끝낸 목판처럼 할머니의 겉으로 흐르는 감정의 무늬는 첨삭되는 일이 없이 같은 음양으로 드러나 있었다.
헤아려 본다면 할머니의 존재란 벽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으면 영윈히 가로막힐 것같은 두려움과 편애에 대한 저항감에 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를 만나고 오면 괜스래 눈물이 났다. 보름에 한차례씩 신학교의 정문에서 그를 만나고 들아와 아파트의 불빛을 보면 문득 엄마가 버리지 못하는 운명의 끈을 자신도 휘어 잡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끔 명희의 눈에는 한 마리의 거미가 선연히 떠올랐다. 어둠의 어딘가에 매복해 있다가 명주보다 질긴 한가닥의 실을 움켜쥐고 소리없이 직하하여 방안에서 평면의 그물을 짜대는 것이었다. 거미의 환영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직조해낸 망상의 조직안에서 명희는 아얘 두 무릎을 꺾고 앉은 채로 잠이 들 때가 많았다. 편안히 누워서는 그 환한 스크린을 통해 들어오는 온갖 사물의 실루에트를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여름이 끝났다. 불빛을 따라 몰려드는 벌레들은 어딘가로 숨어 버렸다.
들판과 산을 휘돌아 그에게로 다가가면 그는 까만 제복의 소매 끝에 가을을 모아 두었다가 명희에게 보여 주었다. 아직 병색이 눈매에 남아 있었다.
이걸 가져.
장식없는 놋쇠로 된 촛대에 등피를 단것같은 가스등이었다. 노란 광택이 표피에 흘러 운치가 있었다.
명희는 부끄러움을 타며 그것을 받아안았다.
가스등은 처음 병실 침대머리에 있던 것이었다.
불을 당기지 않고 지켜 보기만 하던 그였다.
그가 신학대학생이란 사실은 명희에게 이상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병록일지를 손에 쥐고서였었다.
난 네가 캡을 쓰고 다시 나타나리란 생각을 꿈에도 못했다.
반쯤 열린 눈으로 명희를 보며 그가 말했다.
바보같은 녀석. 후후훗…
명희는 의식을 말짱히 되찾은 그를 확인하면서 크게 웃었다.
넌 정말 바보같은 녀석이다.
그를 보니 웃음이 멈추어지지가 않았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가 따라 웃었다. 누가 누구를 속이고 속은 건지 구별할 필요가 없었다.
어딘지 좀 모자라 뵈는 녀석이 있었다. 명희는 요란하게 떨리는 스피커 아래 어색하게 춤을 추고 있는 그를 보고 다가갔다. 유혹하면 금방 넘어갈 것같은 애송이였다.
얘, 혼자 왔니?
빠른 리듬을 타면서 명희는 처음 보는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점잖을 빼거나, 교태를 부리느니 보단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편했다. 처음 그는 무척 당황해 하였지만 이내 경계의 눈빛을 거두고 어울려 주었다.
우린 저기에서 보이헌팅을 내기했어. 싫지 않다면 같이 놀아줄래? 혼자 무슨 재미로 이런델 다니니?
수술실의 동료들과 나이트클럽을 갔을때 명회는 가장 파격적인 방법으로 파트너를 구했다. 동료들이 혀를 내두를수록 명희는 그와 친한 체를 했다. 그의 회화는 춤처림 어색하지 않았다. 달변이었다. 다섯의 남자애가 그의 회화에 빨려 들고 있었다.
헤어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웠어. 놓치고 싶지 않은 밤이지만 곧 출항을 하게 돼. 난 뱃놈이거든. 고길 못잡아도 바다 위에서 1년은 버텨야 하지. 고맙다. 오늘은 정말 잊혀지지 않을거야.
나두 그렇게 생각한다. 자, 안녕!
그게 2년전의 일이었다. 명희는 지난겨울 정형외과 병동으로 옮긴지 두달쯤 지난 어느날 환자가 되어 실려 온 그를 만났던 것이었다.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이 그를 본 순간에 떠올랐던것은 실로 신기한 일이었다.
명희는 입원실을 정해 주고 그의 차트를 열어 보았다.
남자. 26세. 미혼. 대학생. 천주교. 대퇴부 복합골절. 공사 중인 3층 건물에서 추락. 허벅지를 가르고 뼈가 퉁겨 나옴. 다량 출혈. 쇼크로 가끔 의식 없음.
골절상처럼 격렬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저렇게 누워 있을 수가 있다니.
몇년 동안 벌어진 시간의 단구가 남자의 절개된 상처 속에서 짙은 혈액으로 돋아 올랐다. 맞아. 바로 그야. 명희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말없이 마약장의 문을 열었다.
그가 신부수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를 데려온 공사감독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감독도 그를 날품팔이꾼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며칠 후에 학교측에서 보호자를 보냈다. 뚱뚱한 사내였다.
명희는 사내가 선배일 거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최소한 가족은 아녔다.
망가진 몸으로 누워 있으려면 골절상은 아니어야 한다. 살을 벌리고 벌겋게 진물이 흐르는 곳에 고즈를 대고 금속파이프를 뼈 속에 넣지 않으려면. 살속에 박힌 뼈를 뽑아 으스러진 곳을 짜맞추는 일이 없으려면 말이다.
그는 겨울과 봄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의 친지란 거의 없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따금씩 서넛이 찾아와 성가를 불러 주거나,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미쁘게 그들과대화하지는 않는 것같았다.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을 때 명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것을 바라는 눈치였다.
명희는 한동안 밤번을 자청했다. 조용한 시간에 그의 차도를 지켜 봐야 할것같은 막연한 의무감이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다.
왜 공사장엘 갔었니?
견디다 못해 어느날 명희는 그애게 물었었다.
육체가 거추장스러웠어. 너무 편하기만하면 난 욕심 많은 남자가 돼. 나이트클럽에 갔을 매 난 대뜸 알았지. 내 감정이 나를 신부로 만들어 주지 못할거라는 것을. 난 무력해. 그래서 질긴 남자들과 어울리고 싶었던거야.
넌 바보다. 정말이지 편한게 어때서 그러니? 넌 맹추 머저리 쬬다야.
명희는 갑자기 적의를 품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웃음이 터졌다. 좋아질 것도 같아서였다. 그를 많이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목발을 짚고 간신히 일어설 무렵 그는 불면을 시작했다. 한참 동안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가 거미처럼 웅크린 어깨를 펴고 한숨을 토하곤 했다.
환자의 상태를 적는 기록란에 그런 이야기를 낱낱이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이 명희는 슬펐다. 그는 명희가 맡고 있는 환자가 아니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보호막이 필요한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운딩을 하던 의사가 가끔 와서 환자가 안정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귀뜀하였지만 그 이유를 캐어 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넌 하느님이 사랑이시다는 것을 믿니? 벽에 기대면서 그가 엉뚱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난 아무 것도 몰라. 그런 건 말하기조차 싫어. 무신론자니까. 미안해.
명희는 말 끝에 미소를 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는 늘 나를 속여 왔어.
그런 말은 왜 하니?
진실이야. 군에서 제대를 한 이후 난 신과 종교의 문제를 줄곧 생각해왔어. 하지만 내 느낌과 외적인 요구는 서로 빗나가고 있었어. 억지로라도 믿기로 했었지. 하느님이 바로 사랑이시다 라고 말야. 그렇지만 난 더 이상 날 속이지 못하겠어. 모든 것을 쉽게 수용해버려야 하는 믿옴부터 가짜 같애. 사랑의 모습을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 수가 있을까? 내가 보기엔 외면의 탈을 쓰고 있는 신이야. 하느님의 존재는 형상이 아니라 말씀이라 하면서도 믿음을 빙자한 우상을 섬기고 있어. 나 외엔 다른 어떠한 신도 믿지 말라는 질투의 신을 말이야. 민간 신앙이 예부터 오랜 시일을 두고 집단의 생활 공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유일신교의 교리를 우기면서도 타신을 인정한 그리스도교는 맹점 투성이지. 현명한 유대의 랍비들이 지어낸 이스라엘 족속의 민간신앙이 신성한 말씀으로 전도된것은 기막힌 전화위복이야. 과학에선 이미 달을 정복했어. 그러나 종교의 세계는 아직도 독선과 무지의 터널 속에 빠져 있어. 예부터 달엔 옥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다지 않더냐. 그건 전례의 말씀이다. 아무도 부정 못한다. 만약에 당신이 이 진실을 끝까지 왜곡하려 한다면 우린 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처단 하겠다. 이런 식으로 종교는 진실을 기만해왔던 역사가 있어. 지금은 끝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철부지가 있기는 해. 종교는, 믿음이란 좋은 거지. 그러나 그 집단이 허위를 조장해. 독선을 만드는거야. 독선의 시효는 사람의 발로 밟힌 달의 신비를 직접 눈으로 보여 주는 때까진 갈 수가 있어. 자! 똑똑히 봐, 임마! 이게 달이다. 옥토끼가 있니? 먼지 뿐이야. 거짓말장이 같으니라구! 암석덩이와 유토피아를 잘 구분해봐! 그때서야 비로소 함구하겠지. 그네들의 무지를 감추어 주소서, 아멘. 그리스도가 세상에 와 유대인들의 생활속에 있던 민간신앙을 초월하여 사랑으로 세상을 가르친 것을 나는 고마워한다. 하지만 자신의 구원을 믿으며 그에 예속되는 삶만을 최상으로 주장하고 또 그런 형제가 아니면 모조리 죄에 쩔어 사는 줄로 착각하는 불쌍한 사람들. 그렇게 지극히 배타적인 인간들의 오만을 난 미워하고 있는거야. 귀금속에 잔인하게 처형당한 한 사내를 새겨 넣고, 사랑이란 말로 팔고 사는 종교가 무지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거야. 또 난 더 반감을 가진다. 교회의 운영을 위해 거두는 헌금을 사람들 앞에서 무죄를 주장할 수있는 권리금으로 알고 있는 자들에대해 서 말이지. 정말이지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주장해야할까? 정말이지 신이 무엇을 구윈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는 걸까? 아냐, 이제까지 외면을 당해 왔던건 신에게서라기 보다 사람들의 진심이었던 것 같아. 우린 서로를 구원해 주지않으면 안될거야. 더 이상 속이지도 속지도 말자. 사람을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아직도 남자의 갈빗대 하나가 부족하다고 믿게 하는 짓은. 가장 교묘하게 발달한 무속만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니까. 최상의 우상에 대한 소심한 귀속을 구원이라고 오해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반종교적인 발언이구나. 그게 널 속이고 있다고 믿는거니?
그는 고개를 숙였다. 명희는 그가 자신이 감당 못할 미궁으로 빠져 가고 있다는 생각에 측은해 보였다.
퇴원은 그의 고집에 의해서 뜻하지 않게 감행되었다. 그는 자신이 빠져 나올수도 없는 그물을 명희에게 남겨주고 떠난 것같았다. 한동안 병실에는 허전함이 침전물처럼 괴어 있었다.
몇개월을 버텨 보려고 노력했다. 그가 복학을 했던 다음해 봄까지 어렵게 시간이 홀렀다.늘 불안한 일상이었다. 그래서 새장을 들여 놓았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소일거리를 만난 듯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새냐?
이건 카나리아, 이건 문조, 이건 십자매예요.
모두 열 세 마리였다. 지금 알을 품고 있어요.
그래? 거 참 신통하기도해라.
물통에 새물을 갈아 주시구요. 이따금씩 배추 잎사귀를 넣어 주시면 돼요. 모이는 좁쌀과 들깨를 먹여요. 방에 들여다 놓을까요, 할머니?
그래, 냄새가 나지 않을까?
괞찮아요.
새들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할머니는 새들의 부리 안에서 파슬파슬 바스러지는 좁쌀 알갱이를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뮌헨의 엄마로 부터 편지가 왔다. 짧은 내용이었다. 의무감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서구의 짙은 안개 냄새 가운데 엄마가 서 있었다. 명희는 그것을 찢어 발겼다. 손 끝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묻어 났다. 그러나 정작 엄마의 음성이 기억되지 않았다. 엄마는 명희에게 꿈을 주어 본 일이 없었다. 할머니처럼 엄마에 대한 선명한 증오심도 없었다. 그냥 그녀를 버렸다는 상심의 단편들로 엄마의 기억이 모자이크되어 있을 뿐이었다.
3년 후면 된다. 3년은 더 있어야 할것 같애. 자리가 잡히면 널 부르마.
할머닌 어떡하구?
같이 살기로 하자.
엄마 말은 안 믿을테야. 안믿어. 할머닌 절대로 엄마를 믿지 말래.
너와 할머닌 달라.
아냐. 이젠 소용 없어.
엄마는 오랫동안 생활비를 보내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할머니는 질긴 여자였다. 남의 집 궂은 일로 명희를 키웠지만 한번도 궁기를 보인 적이 없었다.
애비가 일찍 떠난 게 죄라면 죄다. 네 에민 널 배지 말았어야 했어. 생면부지의 여자를 등에 업고 들어올 때부터 난 예감했었다. 임신중독에 숨이 넘어갈만 하니까 죽일 수가 없어 데려온거야. 그래서 내 허락도 얻기 전에 네가 태어난 거다.

<7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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