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기술이전 한국엔 특히 인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의 무역장벽도 높지만 기술장벽은 더 높다. 일본은 구미에서 들여온 원천기술을 응용 개발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지만 이를 한국과 같은 개도국에 이전하는데는 무척 인색하다. VTR·반도체·조선기술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작년에 우리 나라 가전 업계는 지난3년여 동안의 교섭 끝에 VTR기술을 겨우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향후2년 동안 수출을 금지하며 수출문제는 그때 가서 협의한다는 빡빡한 조건이었다.
일본 VTR가 세계시장의 90%를 휩쓸고 한국이VTR를 자체생산 할 수 있는 단계에 와서도 선뜻 기술을 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한일간의 무역역조를 시정하기 위해선 좋은 기술의 이전이 가장 긴급한데 일본은 계속 미루고만 있는 것이다. 곧 열릴 한일정상회담이나 각료회담 등에서도 기술이전촉구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11월말까지 우리 나라가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기술은 2천2백40건. 이중55·5%에 해당하는 1전2백66건이 일본에서 도입되었다.
같은 기간에 미국에서 들여온 기술은 5백23건에 23·3%였다.
미국 기술은 건수 기준으로 일본의 절반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기술료 (로열티) 는 2억3천4백만 달러로 일본에 지불한 것보다 4백만 달러나 더 많다.
일본 기술은 잡다한 부분에 걸쳐 그 종류가 많은 반면 기술도 핵심적인 것이 아니어서 그 대가가 싼 것이 특징이다.
이에 비해 미국 기술은 정유·화학 등 덩치가 큰 장치산업에 중점을 둔 것이어서 기술료 지급액 규모도 크다.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은 고도성장을 해온 79년까지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다가 80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으나 작년에는 1월부터 11월말까지 사이에 1백43건이 들어와 78∼79년 수준을 육박했다. 그러나 작년에 일본에 지급된 기술사용료는 2천6백60만 달러로 81년의 3천5백40만 달러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좋은 기술을 들여오려 해도 우리 나라를 잠재적인 경쟁상대국으로 생각, 기술을 안 주기 때문이다.
또 기술을 준다해도 수출금지·원자재 독점공급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고있다.
81년 4월부터 작년 말까지 우리 나라의 각 기업이 체결한 기술도입계약(합작투자 포함)건수는 5백99건으로 이 가운데 2백74건(45·7%)은 일본과 체결한 것이다.
그런데 계약이 체결된 것 중 40· 1%에 해당하는 1백64건은 우리 나라에 기술을 주는 대신 특정 원자재를 반드시 사도록 요구한다든가 판매지역 제한·판매수량 및 가격제한 등 부당한 요구 사항을 포함하고있어 이를 시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지난77년 우리 나라가 1백억 달러 수출고지를 점령했을 때 기술 로열티 지급액은 수출액의 0·58%인 5백80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이 1백억 달러 수출을 이룩했던 67년의 로열티 지급액은 수출액의 2·2%인 2억4천만 달러나 되었다.
세계경기가 불황일수록 기술보호의 벽이 두터워지고있다.
일본이 우리 나라에 제공을 꺼리는 기술분야는 주로 기계·전자다. 더 이상 기술진보가 없는 표준화된 기술까지도 팔지 않으려 한다.
기계부문에서는 수치제어 공작기계와 카메라제조 및 시스팀 설계, 전자부문에서는 컴퓨터주변기기, 터미널제조 및 설계·전자계측기제조·반도체 설계· 웨이퍼제조· 반도체 공청검사기술등에 대해 내놓을 기색이 엿보이지 않는다. 오디오제품의 설계와 금형 제조 기술도 마찬가지다.
섬유에서는 0·1데니어 이하의 합섬섬유 및 카본함유 합섬섬유제조기술도 그 중의 하나다.
우리 나라 경쟁대국인 대만은 2차석유파동이후의 경기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해 전략산업육성과 이에 필요한 기술도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 컴퓨터와 반도체 광학렌즈 등 22개 고도정밀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일종의 실리콘벨리 조성을 마무리지었다.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대만의 기술도입은 1백15건에 달했으며 이중 24건은 기계, 13건은 금속, 다른 13건은 플래스틱 및 고무제조에 관한 것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