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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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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해는 돼지해다. 12지로 계해년.
돼지라면 공연히 천덕꾸러기를 생각하기 쉽다.『돼지 같은…』이라는 말의 어감은 서양에서도 같다. 영어의「피그」나「스와인」,불어의 「코숌」은 다같이 욕심꾸러기, 심술쟁이, 때로는 호색가로 통한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필경 그 먹새 때문이리라. 돼지는 하루 평균 1·6kg씩의 사료를 먹어댄다. 몸무게는 이틀에 평균 1kg씩 붓는다. 그야말로 돼지같이 먹고 돼지같이 자란다. 새끼돼지가 6개월 뒷면 90kg. 푸줏간으로 데뷔할 수 있는 계체량이다.
이런 돼지를 보고 영국의 고고한 철학자「J·S·밀」은 돌이킬 수 없는 험담을 남겼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소크라테스」가 낫다.』
천만의 말씀이다.
우선 돼지가 그 말귀를 알아들었다면 저 한국의 돼지를 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말의 돈아, 가돈, 미돈은 글자 그대로「새끼돼지」,「집돼지」,「멍청한 돼지」의 뜻이 아니다. 아직 절은 덜 들었지만 귀엽기 그지없는「내 아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자의 집「가」자는 지붕아래 돼지를 거꾸로 매단 모양을 하고 있다. 옛 사람들이 얼마나 돼지와 가까이 지냈는지 알 수 있다.
차라리 그런 돼지를 예찬한 사람도 있었다. 역시 동방, 군자의 나라 한국의 대 기자 설의식(작고)의 명문「도야지의 대덕」-.『볼품보다 속 품으로 살아가는 도야지의 처세관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청빈에 자안하고 누추한 집(누옥)에 자적하는 그 심법 상으로도 아부에 필요한 흔드는 꼬리의 소유가 필요치 앉았다.
좌안우현, 이 눈치 저 눈치, 두리번거리는「추태」를 부리지 않는 돼지다움, 바로 그 저돌성울 예찬한 것이다. 이를테면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내 해내고 마는 성취욕을 높이 산 것이다.
『돼지띠가 잘 산다』는 우리 속담은 돼지의 그런 미덕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아무리 「돼지 같은 돼지」라도 구박만 할 것이 아니라 예쁜 구석, 장점을 찾아 칭찬하면 과연 그럴 듯하다.
돼지는 흔히 불결해 보이지만 겉보기와는 다른 면도 있다. 식체, 장 카타르 같은 소화 불량에 걸리기 쉽고, 더러운 환경에선 돈 클레라나 피부병에 약하다. 돼지답지 않은 결벽(결벽)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껍질을 남기지만, 돼지는 모든 것을 남긴다. 고기는 물론이고 기름은 라드(돈지)로, 내장의 액체는 사람이 먹는 장기 약으로, 피는 해모글로빈을, 뼈는 공예품 재료나 비료로, 분뇨는 훌륭한 비료로-.
요즘은 쇠고기 값이 오르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돼지고기의 진미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삼겹살」, 한국식 베이컨을 광고하는 음식점의 간판들이 즐비하다.
자, 이런 돼지를 보고 누가『돼지 같다』는 폭언을 하겠는가!
올해는 더도 말고 원단에 돼지꿈이나 꾸어보자. 전국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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