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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투기에 책임 돌리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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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어제 '서민 주거 안정과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부동산제도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국민을 놀라게 하는 황당한 내용이 없는 한편으로, 그간 고집스럽게 거부하던 중대형 주택의 공급 확대를 중요하게 다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한다. 주요 내용은 공급 확대 대책과 함께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 확대, 실거래가 과세를 통한 1가구 다주택 보유에 대한 양도세 강화 등이다. 이번 대책들에 대해 몇 가지 보완할 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몇 년간의 주택가격 급등 양상은 1980년대 말과 매우 달랐다. 당시에는 주택 유형이나 지역에 무관하게, 그리고 매매-임대 가리지 않고 주택가격이 상승했으나 이번에는 범강남지역의 대형 아파트 위주로 가격이 올랐다. 이는 이 지역 주거 여건이 갖는 프리미엄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게 모르게 평당 2000만원을 주고라도 좋은 집, 좋은 동네에 살겠다는 국민이 많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소형 주택을 많이 지어도 강남 주택 가격을 안정시킬 수 없다. 많은 전문가가 판교 신도시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에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입지와 주거 여건을 가진 중대형 주택을 대량 건설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강남 집값이 주거 여건에 대한 총체적 평가를 담고 있다는 점에 유념하여 교육을 포함한 양질의 도시환경을 신속히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제 개편안은 그 내용이 미리 조금씩 비춰졌기 때문에 국민이 어느 정도 내성을 가지고 있어 입법 과정이 특별히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또 보유세 강화, 거래세 인하, 실거래가 기준 과세를 통한 양도세 실효성 제고라는 기본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그간 학계에서도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부동산 조세의 강화가 민간과 정부의 자원 배분을 정부 쪽으로 쏠리게 하는 효과에 대해서는 걱정 된다. 세수의 중립성과 같은 대원칙 없이 부동산 부자에 대한 벌금의 성격으로 세제를 개편하다 보니 전체적인 조세 부담이 커졌다.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수의 배분 메커니즘을 통해 이 조세에 대해 기득권을 갖는 지역과 계층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나라가 현재보다 '큰 정부'를 가져야 하는지, 부동산 보유 과세가 소득 재분배에 맞는 정책 수단인지, 그 외에 정부가 세금 더 거두어 가는 대신 무슨 서비스를 더 해줄 것인지 등에 대해 국민에게 동의를 구했어야 했다. 정부가 커질수록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성장이 둔화된다는 것이 선진국의 경험이다.

부총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주택가격이 내리고, 서민 주거가 안정되며, 경제 전체의 성장 잠재력이 확충될까? 세금이 오르면 부동산에서 얻어지는 수익이 줄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소유권의 가치가 떨어지며 주택가격이 내릴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효과는 낙관적이지 않다.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이 없다면 세금이 얼마가 되든 가격은 오른다. 보유과세와 양도과세 인상이 주택 공급을 위축시킬 것이므로 장기적인 가격 상승이 걱정된다. 1% 보유과세를 부과하면 투기가 억제되고 집값이 안정된다는 일종의 미신도 있지만, 그 수준의 재산세를 가진 미국 대도시 지역들에서도 지난 몇 년간 부동산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올랐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투기가 부동산가격을 올린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투기는 가격 상승의 결과 내지 과정이지 원인이 아니다. 80년대 말에는 공한지 보유자가, 현재는 1가구 다주택 보유자가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지만 모든 사람이 1가구 1주택만을 가진다면, 집 살 돈이 없는 서민들은 누구로부터 집을 임차할 것인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불확실한 '투기'에 책임을 돌리지 말고 시장이 원하는 양과 질의 주택 공급이 원활히 되도록 돕는 것이 국민 주거 안정의 첩경이다.

손재영 건국대 교수.부동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