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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⑦사회변동] 66. 범죄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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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누군가 은행 금고를 노렸다면 복면을 쓰고 흉기를 든 채 나타났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은행털이는 오후 4시30분 은행 간 결제 시점을 노린다. 전산망을 해킹해 들어가 은행 간 오가는 돈을 인터넷상에서 가로챌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범죄 수법은 더 다양하고 교묘해진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사기와 인터넷 청부살인 등 신종 지능형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범죄도 진화해온 것이다.

정용환 기자

1966년 상업은행 무장 강도 사건

60년대는 생계형 단순 범죄가 많았다. 66년 12월 21일 서울 영등포 상업은행 지점에 4인조 강도가 들이닥쳤다. 범인들은 군 부대에서 카빈총을 훔쳐 은행을 털었다. 피해 금액은 120만원. 쌀 한 가마니가 5000원인 시절이었다. 이들은 훔친 카빈총을 다시 부대에 갖다 놓고 잠적했으나 1년 7개월 만에 부산에서 잡혔다.

1975년 김대두의 연쇄 살인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는 초대형 연쇄살인사건으로 얼룩졌다. 75년 9월 경기도 양주·수원 일대에서는 노인과 여성 17명이 몽둥이 등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모두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참사였다. 신문은 ‘야수의 짓’이라며 연일 1면에 보도했다. 현장에 자신의 소지품을 남기고 다니다 덜미가 잡힌 범인은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김대두(당시 25세)였다. 돈이 없어 범행했다는 그가 빼앗은 돈은 단돈 3만원.

19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

향락·물질주의 범죄가 고개를 들었다. 신군부가 집권한 80년대에는 60년대 초와 비슷한 사회정화 운동으로 한때 범죄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가정파괴범이 늘어나고 조직폭력배들이 세를 불리면서 더 큰 범죄의 씨를 잉태했다. 81년 세상을 경악케 한 이윤상(당시 13세)군 유괴 살인사건은 전형적인 한탕주의의 상징이었다. 이군의 중학교 체육교사였던 주영형(당시 28세)은 도박 빚 1000만원 때문에 제자를 유괴,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88년에는 서울 도심에서 인질·강도 행각을 벌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유행어를 남기고 자살한 탈주범(지강헌 등) 사건이 발생했다.

2004년 유영철의 ‘묻지마’ 살인

“더 못 죽여서 한이다”라고 외쳤던 지존파는 90년대 이후 나타난 반사회적인 범죄를 대표한다. 7명으로 구성된 범인들은 시체 소각용 ‘살인공장’까지 만들어 놓고 가진 자들에 대한 묻지마 살인을 일삼았다. 엽기적 살인 행각은 온보현(94년)·정두영(99년) 등을 거쳐 2004년 유영철에 와서 극에 달했다. 유영철은 부유층 노인과 마사지사 여성 등 20명을 상대로 1년 동안 무차별 살인을 일삼았다. 끔찍한 살인 수법과 용의주도한 시신처리에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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