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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 소홀로 352만평 못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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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부가 4700만여 평의 국유지를 가로챈 토지 사기범을 적발하고도 환수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352만여 평이 사기범에게 다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재경부와 국세청 직원들은 토지 사기범이 땅을 찾아갈 수 있도록 법규를 멋대로 해석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전남 목포와 해남.무안 등 6개 시.군의 불법 취득 국유지 환수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고 법규를 위반한 지침을 내린 재경부 하모(53) 서기관 등 공무원 5명과 토지 사기범 이석호(75)씨 등 27명을 검찰에 수사요청했다고 30일 발표했다.

사기범 이씨에게 넘어간 땅 352만 평의 공시지가는 624억원이지만, 이 땅 중 상당수가 전남도의 J프로젝트 대상 지역 주변에 있어 현재 시가는 따지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감사원은 밝혔다.

토지 사기극은 이씨가 목포세무서에서 국유지 매각 업무를 담당하던 1971년 시작됐다. 그는 국가가 자신의 친인척에게 국유지를 매각하는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4년간 3579만 평을 불법 취득했다. 또 80년부터 6년간 광주지방국세청에 근무하면서 매매 서류 등을 위조해 추가로 1186만 평을 친인척 명의로 빼돌렸다. 모두 합쳐 여의도 면적의 19배에 이르는 엄청난 땅을 가로챈 것이다.

이씨의 범행의 꼬리가 잡힌 것은 86년. 이씨가 공문서 위조 등 혐의로 구속되면서 명의변경 서류를 위조한 사실 중 일부가 포착된 것이다. 검찰은 이씨의 나머지 범행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93년 목포.해남 세무서 재직 당시 3579만 평을 불법 취득한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법원은 이씨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하고 이씨 친인척 63명 명의의 토지 취득을 무효화했다.

당시 정부는 대책회의까지 열어가며 회수 대상 토지를 정리하고 환수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이씨로부터 땅을 산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최종 소유자가 판결문에 나온 63명이 아닌 경우에 한해 시가의 20~30% 가격에 땅을 넘겨주기로 했다. 도로.하천 등 행정용지는 땅을 돌려줄 수 없어 평가액의 80%를 보상해 줬다.

99년 만기 출소한 이씨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광주지방국세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박모씨를 동원해 2001년 재경부에 선의의 취득자 범위를 넓게 인정할 수 있는지를 질의토록 한 것. 이에 대해 재경부 국고국은 법원 판결로 특례매각 대상에서 제외된 63명 중 8촌 이내 친족 28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척과 지인들도 특례매각을 받을 수 있다고 회신했다. 재경부는 한 술 더 떠 이미 다른 사람 명의로 등기를 마친 토지만 특례매각할 수 있다는 규정을 어기고 국가 소유로 등기된 땅도 매매서류만 있으면 넘겨주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씨는 또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불법 취득 토지 1186만 평에 대해서도 소유권 이전 작업을 계속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이씨 수중으로 넘어간 땅이 352만 평(공시지가 624억원).

감사원 유영진 특별조사국장은 "재경부와 광주국세청 사이에 질의와 회신이 오가는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는지 여부는 밝히지 못해 일단 검찰에 수사의뢰했다"며 "이씨에게 넘어간 땅 중 145만여 평은 취득시효가 완성되는 등의 이유로 다시 환수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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