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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문기자 칼럼

이순신 같은 국방개혁 안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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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KBS1 TV)이 엊그제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제독이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는 것을 마지막 장면으로 종영됐다. 이 드라마를 계기로 연전연승한 이순신의 뛰어난 리더십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현역 군사전략가 노병천(육군 대령)은 이순신의 전승비결이 제승(制勝)과 불패(不敗) 전략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순신을 알면 일본을 이긴다.21세기군사연구소). 제승과 불패는 싸우면 반드시 이기되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이순신은 일본과 7년 전쟁 동안 치른 23번의 해전에서 모두 이겼다. 그러면서도 왜군의 공격을 받아 잃은 전선은 두 척뿐이다. 그래서 명장이다. 세계적 전쟁 영웅과 비교해 보면 확연하다. 칭기즈칸은 20번의 전투 중 두 번 졌고, 나폴레옹은 23번 싸워 네 번 패했다. 프레드릭 대제도 12회의 전투에서 세 번의 패전을 기록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퇴한 일본 연합함대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는 이순신을 격찬했다. 도고는 1905년 거제 앞바다에서 러시아 발틱함대 37척을 침몰시킨 뒤 발틱함대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에게 "해군 역사상 군신(軍神)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넬슨 제독이 아니라) 이순신 한 사람뿐이오"라고 했다.

이순신의 제승과 불패는 그저 얻어진 게 아니다. 그는 사방팔방으로 정탐 요원을 보냈다. 그런 뒤 신중하게 작전 계획을 세웠다. 전선 숫자보다 적을 탐지하는 초탐선을 더 많이 운영했다. 1593년 이순신 함대는 96척이었는데 초탐선은 106척이었다.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한 명량해전에서는 32척의 초탐선을 운영했다. 항상 적의 동태를 꿰고 때를 기다렸다.

윤광웅 국방장관이 내일 국방개혁법안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10월 국회 제출이 목표다. 국방개혁안을 법제화하는 것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다. 이 법안은 앞으로 상당 기간 국방정책의 근간이 될 전망이다. 국방부와 합참 등의 실무자들이 지난 몇 달간 밤샘 작업을 해 왔다.

그런데 국방개혁법안에 왠지 미덥지 않은 구석이 있다. 첫째는 하필이면 프랑스식을 본 땄느냐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이후 국방정책에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에 영토를 내줬다. 현재 진행 중인 프랑스 국방개혁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

또 하나는 너무 서둔다는 느낌이다. 개혁법안 중 69만 명인 현 병력을 2020년까지 50만 명으로 줄인다는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들린다. 낡은 사단 편제와 군 구조를 21세기형으로 자신 있게 개편할 수 있을 때 병력을 30만~40만 명 수준으로 감축, 정예화할 수 있다. 국가안보 전략과 국방 목표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분명치 않다.

국방부가 이처럼 검증 과정이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국방개혁법안을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6월 전방 GP 총기난사 사건으로 윤 장관 해임안이 나왔을 때 노 대통령은 국방개혁의 중요성을 이유로 이를 물리쳤다. 윤 장관으로선 뭔가 실적으로 보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법하다. 윤 장관의 그러한 바쁜 마음이 국방개혁법안의 서두름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국방개혁은 수십조원의 국방 예산은 물론 국가안보가 걸린 중대 사안이다. 지금 같은 날림공사로는 이순신의 제승과 불패 전략이 담긴 개혁안을 만들어낼 수 없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