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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 여물리 '행복마을 콘테스트'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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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서 동쪽으로 85㎞ 떨어진 경기도 양평군 여물리. 공식적으로는 수도권이지만 실제론 농사밖에 지을 게 없는 동네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어서 상업시설 설치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민들에게 농사 지을 땅이라곤 텃밭이 전부다. 다른 동네로 드나들 수 있는 길은 마을 남쪽에 있는 60m 길이의 여물교가 유일하다. 폭은 자동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인구도 332명 뿐인 작은 마을로 남아있다. 2006년까지만 해도 이 마을 주민들의 가구당 소득은 연간 500만원에 그쳤다.

사람이 적고 외부와의 접촉이 많지 않은 만큼, 자연 경관은 그대로 보존됐다. 25개의 골짜기와 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여물천이 그것이다. 2009년 고향인 여물리로 귀농한 김미혜(52)씨는 이를 마을의 장점으로 살리기로 했다.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 자연 경관을 즐기고 싶어하는 서울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김씨의 기획으로 마을에선 농촌체험과 주말농장 사업이 시작됐다. 모내기(봄)ㆍ송어잡기(여름)ㆍ김장체험(가을)ㆍ썰매타기(겨울)처럼 계절마다 프로그램을 달리해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이와 함께 5~10가지 농산물을 상자에 담아 배달해주는 ‘꾸러미’ 사업을 운영하고, 직거래 장터와 캠핑장도 생겼다. 이 같은 노력으로 마을 가구당 소득은 올해 1800만원으로 올랐다. 8년 만에 세 배 넘게 소득이 증가한 것이다. 마을 출신 학생을 위한 장학금도 1억원을 조성해놨다. 공익성 여물리장은 “귀촌인들이 갖고 있는 재능으로 살려낸 마을”이라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농촌문화체험 프로그램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성과를 낸 여물리마을이 최근 열린 농림축산식품부ㆍ중앙일보 공동주최 ‘제1회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체험ㆍ소득 분야 1위를 차지했다. 행복마을콘테스트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을 활성화한 성공 스토리를 뽐내는 공모전이다.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농촌이 발전할 수 있다는 뜻에서 ‘함께 만들어요, 행복한 우리 마을’이라는 구호로 첫 대회를 열었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정부는 일률적으로 돈을 나눠주고, 농촌에선 중앙정부만 쳐다보는 종전 방식의 하향식 투자로는 인구감소ㆍ고령화라는 농촌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없다”며 “근면ㆍ자조ㆍ협동 정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던 우리의 경험으로 농촌을 재도약 시켜보자는 뜻”이라고 대회 취지를 설명했다. 콘테스트는 여물리마을이 1등을 차지한 ‘소득ㆍ체험’ 분야를 비롯해 ‘경관ㆍ환경’, ‘문화ㆍ복지’ 등 3개 분야에서 열렸는데 충북 옥천군의 안터마을과 제주 서귀포시 가시리마을이 각각 1위에 올랐다. 이 마을은 3000만원씩 발전 지원금을 받게 된다. 이런 식으로 마을 간 발전 경쟁을 촉진하고, 성공 비결을 공유하자는 게 대회의 목적이다. 9월 지역 예선부터 시작한 이번 콘테스트에 참가한 마을은 1891곳이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안터마을은 35년 전 대청호가 생기면서 농사 지을 땅이 거의 다 물에 잠긴 곳이다. 농사를 지을 곳이 마땅치 않아 원주민들은 그동안 마을을 떠났고, 주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면 “대청호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어린이의 웃음이 없어졌고, 주민들은 가난함 속에서 고스톱을 치고 막걸리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마을이 됐다. 그런데 2007년 마을에서 반딧불이가 발견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반딧불이를 볼 수 없는 도시 사람들을 불러 관광지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싹튼 것이다. 주민들은 더 많은 반딧불이가 살도록 하기 위해 농약을 쓰지 않고, 화학비료를 줄였다. 가로등 불빛도 밝기를 낮췄고, 비포장 도로는 그대로 흙에 덮인 상태로 놔뒀다. 그 결과 반딧불이가 늘어났고 맹꽁이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하나 둘 늘면서, 2009년부터는 반딧불이 축제를 열고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대청호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었던 마을이 이제는 대청호의 혜택으로 살아난 마을이 된 것이다. 2008년 50가구에 131명이 살던 이 마을 인구는 올해 182명(72가구)으로 늘었다. 반딧불이가 살 정도로 공기 좋은 마을이란 소문이 나면서 귀농ㆍ귀촌인이 유입된 것이다. 이 마을 이성균 이장은 “반딧불이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숲 속 체험 길’은 주민들 스스로 일궈낸 공간이어서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실개천에 가재도 늘어날 정도로 환경이 깨끗한 곳이어서, 그만큼 우리 동네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남동쪽으로 40㎞ 거리에 있는 서귀포 가시리마을은 도시와의 단절과 ‘외진 곳에 산다’는 인식 때문에 주민들이 자신감을 잃어가던 곳이다. 그러다가 “마을을 이렇게 놔둬선 안 되겠다”는 의견이 주민들 사이에서 나왔다. 마을개발위원회를 만든 2009년 첫해에만 23번의 회의를 열었다. 그러면서 ‘유채꽃 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도 세워 주민들이 참여하는 조직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유채꽃 단지ㆍ목공방ㆍ창작지원센터ㆍ조랑말박물관이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2012년엔 ‘대한민국 경관대상’도 받았다. 올해 인구는 1160명(485가구)으로 다른 분야 1위 마을보다 많다. 지난달 경기도 안성에서 열린 콘테스트 결선에서 가시리 마을이 소개될 땐 관중석에서 “이 분야(문화ㆍ복지) 1등은 여기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영일 가시리 마을 위원장은 “주민들의 힘으로 박물관까지 만든 마을은 전국에서 유일할 것”이라며 “지금은 마을 달력 4000부를 만들고 소식지도 내면서 공동체 의식을 높여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심사위원들은 대회에서 뽐내기를 위한 발전이 아닌, 그 발전 내용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점수를 매겼다고 입을 모았다. 조세현 숭실대 의료관광경영학과 교수는 “마을에 젊은 사람이 많을수록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며 “그래서 귀농ㆍ귀촌인과 어린이가 많은 마을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총괄심사위원장인 최수명 전남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도시에서 온 이주민과 원주민이 섞여 살 수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성장동력으로 승화시킨 마을이 상위 성적을 거뒀다”며 “어려운 여건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마을을 살리고, 가족공동체를 복원하려는 노력에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행복마을 콘테스트는 농식품부가 독일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독일 농식품부는 3년에 한 번씩 ‘우리 마을에 미래가 있다’(Unser Dorf hat Zukunft)라는 이름으로 마을의 발전상을 뽐내는 대회를 여는데, 이를 한국에 정착시킨 게 행복마을 콘테스트다. 196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이 행사는 지난해 대회에선 9개 마을이 금상을 차지했다. 인구는 536명이지만 지역의 커다란 방앗간이 18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함부르크 남쪽 90㎞ 거리의 볼센(Bohlsen) 마을이 대표적이다. 이동필 장관은 “독일 사례를 따라하는 것을 넘어 정책적인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며 “농촌 주민들이 먼저 마을 발전 계획을 가져오면 이를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농촌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최선욱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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