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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KBS 개혁號에 책을 싣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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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면을 꾸리는 게 일이니 나는 사람 만나도 화제가 책이기 십상이다. 지난주가 특히나 그랬다. "학교 선배인데, 당신이 꼭 만나야 돼." 이억순 전 세계일보 주필의 통보다.

대선배를 모시고 꼼짝없이 뵙게 된 분이 조성옥 전 충남대 총장이다. 올해 일흔셋인 그 분은 즐거운 표정으로 당신의 은퇴 근황을 들려줬는데, 독서시장의 주력부대라는 30, 40대 말고도 노년 파워의 잠재력을 가늠케 했다.

서평 지면 섭렵이 주말 일과라는 것, 이때 구입할 책 리스트를 만들어뒀다가 책방 나들이를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게 그분의 전언이다.

단골은 종로6가 도소매점 골목. 그곳에서 따끈따끈한 새 책 뒤적이면서 30% 할인혜택도 받는다는 게 그 분의 귀띔이다. 노인 파워라면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전우익 할아버지도 빼놓을 수 없다. 경북 봉화에서 전화로 '행복한 책읽기'모니터링 해주는 '명예서평위원'이 그 분이다.

지난주 만났던 문화관광부 유진용 문화산업국장의 경우는 멋쟁이 행정관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공식 모임에서 그는 북섹션들을 펼쳐 놓고 책 고르는 게 휴일 재미라고 말했다. 주무국장이니까 당연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가 정색했다.

"내 개인으로 즐기는 영역이다. 책이 상품 이상의 상품이듯 서평 지면 역시 그렇다고 본다." 이쯤되면 조금은 부담스럽다. 책 정보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 아니던가. 한 지붕 아래의 김영희 대기자가 사석에서 들려준 책 얘기도 나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책읽기란 세가지요. 신문 뒤적일 때 병행하는 정보의 차원, 칼럼이나 강연 때 인용하는 지식의 차원, 그리고 '가치의 영역'이 별도로 있지요." 역사.철학분야 고전 반열의 레퍼런스들을 긴 호흡으로 읽어내는 작업이 가치 영역의 책읽기란다.

하긴 그가 치료를 끝낸 무릎 고장을 핑계삼아 골프 약속을 하지 않은 지 오래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자, 이들의 경우를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몇년새 우리 사회의 책읽기란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힌 셈이다. 그러나 독서환경에서 꼭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도서관 인프라. OECD 회원국 중 맨 꼴찌라는 인구대비 도서관수(11만명당 1개), 중앙정부의 도서구입비 총액이 미 하버드대 한곳(약 3백억원)의 3분의1 수준이라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도서관 건립을 요구하는 것은 당당한 시민의 기본권인데도 MBC '기적의 도서관'에서 보듯 겨우 한 방송사의 캠페인에 의지하는 게 우리 사회다. 그건 거의 왕코미디다.

또 하나 짚어야 할 게 공중파의 책 프로 보강 문제다. 현재 공중파의 책 프로그램은 MBC '!느낌표'와 KBS 'TV, 책을 말하다'등 두세개에 불과하다.

그걸 빼고는 공중파는 책과 담을 쌓았다. 어떤 철학교수는 2~3년 간격으로 'TV안식년'을 둬 수상기를 아예 창고에 집어넣는다지만, 모든 이가 그럴 순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TV를 좀더 진지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정연주 신임 사장의 개혁 KBS호는 시청률에 연연치 않겠다던가? 이 작업에 최우선이 제2, 제3의 책 프로 추가 문제일 것이다. 알고보면 책 읽자는 말처럼 황당한 게 없다. 너무도 당연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을 반복해야 하는 게 바로 우리 사회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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