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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 거부 걸린 택시기사, 앱 보여주며 "예약 있어서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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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10일 밤 서울 종로1가 사거리에서 경찰이 택시 승차 거부 단속을 벌이고 있다. 이날 집중 단속 지역은 종로·마포·강남 등이었다. [김성룡 기자]

지난 10일 밤 12시2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기자에게 빈 차 표시를 꺼놓은 택시 한 대가 조용히 다가와 창문을 열고 행선지를 물었다. “청담역으로 가자”고 하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대로 지나갔다. 강남역에서 청담역은 택시비가 6500원(약 4.5㎞) 정도 되는 거리다. 종로 주변도 상황은 비슷했다. 종로2가 사거리에서 만난 정난영(28)씨는 “종각에서 택시를 잡다가 여섯 번이나 승차 거부를 당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본지 취재진은 10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종로1가, 홍대입구역, 강남역 등 서울시내 주요 지역에서 택시 승차 거부를 단속하는 현장을 취재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승차 거부 등을 집중 단속했다.

 지역마다 교통경찰과 서울시 단속원 30여 명이 나와 단속을 벌였지만 택시들의 승차 거부는 여전했다. 종로1가 사거리에서 만난 한대규(33)씨는 “중곡동이 집인데 오늘 집에 못 갈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씨는 개인택시 4대에 승차 거부를 당한 후에야 간신히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다. 홍대입구역에서 만난 김건형(19)씨도 연거푸 승차 거부를 당했다. “연희동으로 가려고 하는데 택시기사들이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앞에 멈췄다가 행선지를 듣고는 지나간다”고 했다.

 단속원과 택시기사 사이의 실랑이도 벌어졌다. 강남대로에서 양재역으로 가자는 손님을 태우지 않았다가 적발된 택시기사 민모씨는 도로에 차를 세우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 괴롭히지 말라”며 단속원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면허증 제출을 거부하다 경찰이 다가와 “자꾸 이러면 공무집행방해로 검거하겠다”고 하자 면허증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콜택시를 부르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승차 거부 단속을 빠져나가는 기사가 늘고 있다. 승차 거부를 하다 적발되면 앱으로 바로 콜택시 손님을 잡아 “예약 손님 때문에 승차 거부를 했다”고 우기는 방법이다. 강남대로에서 빈 차 표시등을 끈 채 승차 거부를 하다 적발된 한 택시기사는 스마트폰을 내보이며 “예약된 손님을 태우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단속원 박모(65)씨는 “여기도 손님이 많은데 굳이 학동역에 예약 손님을 태우러 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이날 자정이 넘어가자 택시 잡기는 더 힘들어졌다. 단속이 알려지며 택시기사들은 단속 지역으로 오지 않았다. 일부 택시는 손님이 없는데도 빈 차 표시등을 끈 채 단속 지점을 벗어났다. 단속원 이모(65)씨는 “우리는 새 쫓는 허수아비”라며 “단속 지점을 조금만 벗어나면 승차 거부하는 택시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글=채승기·안효성·고석승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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