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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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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경빈 기자 중앙일보 부장
박 의원은 2002년 기자 시절 처음 본 정윤회씨는 차분하고, 조용하고, 치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그가 만일 비선 실세라면 차라리 공식 직함을 주고 청와대에서 일을 시키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박영선(54)이 돌아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당 대표 격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내려놓고 잠시 무대에서 사라졌던 3선 의원(서울 구로을) 박영선 말이다. 그는 내년 2월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거취를 고민 중이다. 새정치연합은 사분오열된 당을 하나로 묶고 환골탈태를 실천할 통합과 혁신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 문건 파동으로 세상이 시끄럽던 9일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박 의원을 만났다.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고 두 달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혼자 생각을 많이 했다. 정치라는 게 정말 뭔지, 소통과 네트워킹은 어떻게 하는 건지… 이런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당을 이끌며 느낀 자신의 한계와 부족한 점은.

 “올해로 정치에 입문한 지 꼭 10년이다. 그동안 준비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대위원장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맡게 됐다. 막연한 생각만 있었지 구체적 방안이 없었다. 준비 안 된 일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리더 역할을 하기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반성을 했다.”

 -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할 생각인가.

 “최근 부쩍 그런 얘기를 하는 분이 많다. 이유를 들어보면 단칼에 거절하기엔 여러 가지 타당성이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결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김부겸 전 의원과 손잡고, 둘 중 한 명이 나가는 건 어떤가.

 “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 용의가 있다.”

 -박 의원은 출마 안 하고?

 “그렇다. 김 전 의원이 나하고 생각이 똑같은 건 분명 아니다. 김 전 의원은 나보다 좀 둥글다고 할까. 나는 경제민주화나 경제개혁, 검찰개혁 등에서 분명한 원칙이 있다. 김 전 의원이 출마한다면 이 부분은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국 친노(親盧) 대 비노(非盧)의 싸움이고, 문재인이냐 아니냐의 싸움 아닌가.

 “친노 대 비노 구도로 전대가 치러지면 새정치연합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이 구도를 깨야 한다. 누가 우리 당의 미래이고, 누가 비전을 줄 수 있느냐를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 친노 대 비노 구도가 되면 누가 당선된들 당이 온전하겠나.”

 -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그 구도로 갈 가능성이 농후한 것 아닌가.

 “그러니 우리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친노도 울타리를 허물어야 하고, 비노도 친노를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전대를 앞두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제3세력이 부상할 가능성은 없을까.

 “완전히 부인할 순 없다.”

 - 구심점 역할을 누가 하느냐가 문제일 텐데.

 “국민이 납득할 만한 사람이 그 역할을 한다면 새로운 동력을 만들 수 있다고 보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 의원이 그 역할을 해 볼 생각은 없나.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의 야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만 갖고는 힘들다. 새누리당 안에서도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를 지향하는 분들과 이런 문제를 가지고 터놓고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실망을 넘어 아예 기대를 접은 사람이 많다.

 “잘 알고 있다.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1980년대를 지배했던 운동권적 시각이라든지 우리가 고집하고 있는 사회·경제 시스템이 정말 옳고 미래지향적인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 그런데 정치지형상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게 자유롭게 되려면 선거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즉 정치개혁과 같이 가야 한다. 유럽식 다당제를 허용하든지 아예 미국처럼 공천권을 국민에게 줘서 일을 열심히 하는 국회의원은 오랫동안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 줘야 한다. 어제 국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이런 게 되지 않고서는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이 발돋움하기 어렵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다.”

 -청와대 문건 파동을 어떻게 보나.

 “오랫동안 누적된 게 터진 거라고 본다. MBC 기자였던 2002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씨를 처음 봤다. 2004년 국회의원이 돼서 박근혜 의원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는 안 보이더라. 그래서 그곳을 떠났구나 생각했다. 이후 당 대변인 자격으로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협상에 배석하면서 어떤 비선 실세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일절 언론에 알려지지 않는 게 참 신기하다고 느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그 부분에 대한 얘기는 아예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이번 문건 파동을 보면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 대표 정도 되면 누구나 비공식 참모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누군지 다 안다. 그런데 유독 박근혜 대표의 경우에만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남들이 잘 모르는 비선 실세가 있었고, 그것이 곪아서 터진 게 이번 사건이다, 이런 뜻인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비선 실세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게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차라리 공식 직함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게 나았을 것이다.”

 -2004년 갑자기 뒤로 빠진 게 이상하지 않나.

 “그건 본인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 다만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뽑은 사람이 정씨라는 건 다 알려진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공식적으로는 문고리 3인방이 있고 3인방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서 의견을 줄 수도 있는 것인데, 내가 보기엔 그게 좀 지나쳤다는 거다.”

 -정씨보다 전 부인인 최순실씨가 더 실세일지 모른다는 보도도 있던데.

 “비슷한 얘기를 나도 한참 전에 들었다. 청와대 출입기록을 보면 진상이 밝혀질 수 있다고 본다. 누가 진짜 실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국회가 요구하면 출입기록을 주게 돼 있나.

 “법적으로는 주게 돼 있다. 하지만 안 줄 거다. 이명박(MB) 정부 때부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를 무시해 왔다. 처벌규정이 없으니까.”

 -올 7월 국회에서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 총무비서관 관련 의혹을 제기했는데.

 “그때 나는 지금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내용의 90% 이상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들은 얘기 중 이 비서관이 청와대에서 퇴근하면서 서류를 싸들고 강남에 있는 어느 음식점에 가고, 거기서 인사 문제가 결정된다는 얘기가 있길래 그걸 물었던 거다.”

 -정확하게 언제 들었나.

 “올 6월에 들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 사고가 너무 많지 않았나.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 정말 걱정이 돼 물어봤고, 그래서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왜 이 비서관 문제만 제기했나.

 “세월호 정국이라서 세월호 문제를 해결한 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생각이었다. 이 비서관이 국회 운영위에 나오는 경우가 드문데 마침 그날 이 비서관이 나왔더라. 그래서 일단 기록용으로라도 남기기 위해 질문한 것이다.”

 -이 비서관의 반응은 어땠나.

 “그의 표정이나 말투를 보면 굉장히 당황한 느낌이었다. 속기록에도 나와 있지만 처음에는 그도 시인했다. 서류를 싸가지고 집에 가서 보는 경우가 있다고. 어떻게 청와대 서류를 집에 가지고 가느냐, 불법 아니냐고 따지니까 자기가 읽던 책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국회에서 일문일답을 해 보면 거짓말인지 아닌지 금방 느낌이 온다.”

 -문제는 그 얘기를 해 준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래서는 정말 안 되겠다고 생각해 얘기를 꺼낸 것이고, 그분도 국가를 걱정하는 차원에서 해 준 얘기다.”

 -누구라고 하면 모두가 수긍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

 “그렇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동아일보를 고소했다. 언론을 겁박하는 모양새다.

 “이 사태가 어디서 비롯됐든 비서실장 책임론으로 귀결돼야 한다고 본다.”

 -뭘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보나.

 “대통령이 정말 청와대를 개혁해야 한다. 김 실장은 책임지고 물러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앉혀야 한다. 또 국정 운영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문고리 3인방도 물러나야 하나.

 “역할을 축소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은 단순한 메신저라고 하지만 밖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내가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해 보니 문고리가 뭘 의미하는지 알겠더라. 내 보좌관은 아무 일도 안 했다. 그냥 문 앞에 앉아 있는 게 전부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방에 들어올 때 들어가도 되느냐고 보좌관에게 꼭 물어보더라. 보좌관이 ‘지금 좀 쉬고 계시는데요’ 하면 그냥 돌아간다. 여기서 문고리 권력이 생기는 거다. 대통령이 이 부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새정치연합으로서는 물실호기(勿失好機)의 기회를 만났는데도 전대를 앞두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지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나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남 얘기하듯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직접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주변에서 많이 말린다.(웃음) 그 정도 했으면 됐지 이제 그만하라고.”

 -15일 국회 긴급현안질의 때 한 방 터트릴 계획은 없나.

 “생각 중이다.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대응을 보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될 때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기자로서 박 대통령을 3번 인터뷰했다. 박 대통령의 능력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이 올바르고, 어떤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야 하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 생각에 동의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분께 결여돼 있는 것은 사회성이다. 사회생활·조직생활을 한 경험이 없지 않나. 무엇을 결정해야 할 때 어떤 거버넌스 구조로 해야 하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약점이 분명히 있다. ”

 -당 대표도 해 보지 않았나.

 “당 대표와 대통령은 다르다. 당 대표는 커튼 속에 가려질 수 있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 없다.”

 -청와대 오찬 때 61명의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한마디도 못 하고 왔다.

 “슬픈 현실이다.”

 -새누리당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보나.

 “ 청와대 출장소, 거수기 역할 하는 것. 대통령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는 것.”

 - 그런데 돌아와서는 구시렁구시렁한다.

 “그것만 해도 상당히 발전한 거라고 생각한다.(웃음)”

 -이번 문건 파동을 계기로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균열이 생길 걸로 보나.

 “이미 여론조사에서 반영이 되고 있지 않나. 하지만 대통령이 사안을 직시하고 문제를 바로잡으면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까지 나온 대통령 발언으로 봐서는 전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진=김경빈 기자

박영선 의원은 …

1960년 경남 창녕생. 82년 경희대 지리학과 졸업, MBC 아나운서. 83년 MBC 보도국 기자. 2003년 MBC 경제부장. 2004년 열린우리당 대변인, 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 2008년 18대 민주당 국회의원(서울 구로을). 2012년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 법사위원장, 19대 민주당 국회의원(구로을).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5~10월), 비상대책위원장(8~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