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특권」줄다리기-북한대표부 지위재검토 몰고 온 "추행"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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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유엔대표부 오남철의 추행사건에 관해 전에 없이 강경한 용어를 사용한 미국무성의 8일자 성명은 미국정부가 곧 북한대표부에 대해 모종의 강경조치를 취할지 모른다는 추측을 자아내고 있다.
9일 정오 국무성브리핑시간 중 이 성명 속에 든 『북한유엔대표부를 재검토하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대변인은 『성명서문안이상 첨가할 말이 없다』면서 부연설명을 거부했다.
지금까지 미국무성의 공식논평은 늘 객관적 법 해석의 범위를 넘지 않는 성격의 것이었다. 그들은 『북한대표부는 업저버이기 때문에 기능적 특권밖에 없다. 기능적 특권이란 공식업무 수행상의 과실에 대해서만 면책특권이 인정된다는 뜻인데 오남철이 받고 있는 혐의는 명백히 이 범주에서 제외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8일의 성명은 북한대표부를 『재검토한다』고 말함으로써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같이 비교적 온건한 반응 앞에서 북한대표부는 실질적 영향력이 없는 유엔기구의 힘을 빌어 자신들의 곤경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즉 그들은 막후활동으로 유엔업저버단에도 전면적 「면책특권」이 인정돼야한다는 내용의 건의를 법사문제를 담당하는 제6위원회가 채택하도록 하는 공작을 벌여왔다.
제6위원회는 9일 하오에 열려 이 문제에 대한 토의를 벌이기 시작했는데 표결은 10일 상오(한국시간 10일 밤)에 실시될 예정이다. 유엔소식통의 분석에 따르면 유엔의 1백57개국 대표가 모두 참석하도록 된 6위원회에서 이 건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크다.
북한이 30∼40개 회원국의 지지표를 원래부터 확보하고 있고 동료업저버의 권익을 높이는 문제라는 표면적인 명분이 서있는데다가 각 국의 이해관계가 직결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선심표」가 몰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쌍무적 문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의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하등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질적으로도 법사위의 건의안이 총회에 제출돼 통과된다 해도 효력상 그것은 건의이상의 무게를 갖지 앉는다.
『안보리의 결의안도 무시되는 시대인데 원칙상으로도 구속력이 없는 총회, 또는 법사위의 결의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한 외교관은 말했다.
이 사건은 지난 9월5일 오남철이 뉴욕부근 한 호숫가에서 43세된 한 흑인여교사에게 접근, 갑자기 젖가슴을 만지고 넘어뜨려 추행하려했던 데서 비롯됐다.
오는 이 사건으로 인해서 미대배심원에 의해 정식기소 됐으나 사건발생 3개월이 넘은 지금까지 줄곧 북한의 유엔대표부 건물 안에 틀어박힌 채 아직 사직당국에 출두하지 않고 있다.
처음 이 사건을 수사했던 뉴욕주 웨스트체스터군 경찰에 따르면 당시 오가 뉴로셀지역에 있는 트윈호수에서 낚시를 하던 흑인여교사를 추행하려 했을때 현장에는 조준하·강자용 등 또 다른 2명의 북한외교관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오의 추행시도를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치안관은 『오남철 등 북한외교관 3명이 강제추행을 하려하자 그 흑인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러나 오는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주민들에 의해 붙잡혔으며 이 때 오가 외교관신분증을 제시하며 면책특권을 주장, 주민들은 신분을 확인한 뒤에 이들을 놓아주었다』고 말했다.
사건발생 14일 만인 9월29일 뉴욕주검찰은 주범 오에게 30일에 뉴욕지방법원에 출두할 것을 명령한 소환장을 발부했었다.
그러나 오가 이같은 법원의 출두명령을 거부하는 바람에 30일로 예정됐던 청문회는 열리지 못했다.
법원영장에 의하면 오가 받고 있는 1급 성적추행혐의는 최고 7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중죄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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