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헌금에 애꿎은 매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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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추수감사절이 있기 3일전이다. 저녁을 지으려고 부엌에 나가있는데 갑자기 국민학교 1학년짜리인 딸애가 울고불고 야만이 났다.
어쩐일인가 싶어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더니 딸애가 교회 현금 봉투를 꺼꾸로 들고 흔들며『이안에 넣어두었던 2백50원이 없단말이야. 난 몰라』하고 울며 법석믈 을고 있는 것이었다. 제깐엔 추수감사절에 헌금을 5백원 내겠다며 아빠·엄마가 어쩌다 주는, 용돈을 꼬박 꼬박 헌금봉투에 모아두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연년생인 남동생이 있다가 제깐에도 그런 상황에선 자기가 의심받을 것이 뻔하니 변명을 해야겠다는생각인지 『내가 보니까 아무것도 없잖아. 그래서 누나한테 없다고 그랬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그말을 듣자 대뜸 그녀석이 의심스러웠다.
『네가 가졌지? 빨리 말해! 안 그러면 혼날줄 알아.」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이틀전에도 봉투에 넣어두었던 1백원이 없어졌다고 난리기에 그앤 아무말 않고 내가 대신 주었었기 때문이다.
『안 혼내킬테니까 말해봐. 네가 갖다 뭐 사먹었지? 그렇지.』
『내가 안가졌단 말이야. 내가 보니까 벌써 없던데뭘.』
나는 화를 참지 못해 손에 잡히는 먼지떨이개로 녀석의 종아리를 몇번 내려쳤다. 그러자 녀석은 소리도없이 굵은 눈물방울만 뚝뚝 떨어뜨리며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딸애에게 2백50원을 주고 흥분이 가라앉자 녀석을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물어보았다.
때린것이 마음도 아팠지만 미워서 때린것이 아니고 네가 그런 나쁜짓을 했기때문에 때린 것이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사코 안가졌단다. 그래서 다시 부엌에 나가 저녁을 짓고 있는데 한 30분 지났을까,
『엄마, 돈 찾았어, 이밑에 떨어져 있는데 뭘. 거봐 내가 안가졌잖아. 누난 잘 찾아보지도 않고.』
녀석이 어느새 명랑한 얼굴로 엄마를 힐책하듯 얘기하고 있었다. 그말을 듣자 나는 죄없는 아이를 공연히 때렸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기쁘면서도 나 자신의 성급한 흥분이 부끄러워 녀석을 꼭 껴안고 볼에다 몇번 거듭 뽀뽀를 해주었다. <서울용산구보광동9의28 15통5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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