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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 사퇴… JFK공항에서 사퇴까지 36시간 총정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중앙포토]

조현아(40)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후진' 사건 후 4일, 이 일이 세간에 알려진 지 36시간 만에 사퇴했다.

조양호(65) 한진그룹 회장은 큰 딸인 조 부사장의 사표를 받고 수리했다. 9일 오후 프랑스 출장에서 돌아온 조 회장은 인천공항에서 임원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조 부사장은 회의에서 “본의 아니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고객 및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스러우며 저로 인해 상처를 입으신 분이 있다면 너그러운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대한항공의 모든 보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발단=사건발생 (11월 5일)
지난 5일 0시 50분(현지시간) 미국 뉴욕 JFK 공항. 인천행 KE086 항공기 일등석에 탑승했던 조 부사장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비행기를 멈추게 하고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 이 때문에 항공기는 게이트로 다시 돌아가면서 250여 명의 승객이 불편을 겪었다.

대한항공 등에 따르면 조 부사장은 땅콩 등 견과류를 건네고 있는 승무원에게 “매뉴얼대로 서비스가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승객의 의향을 물은 다음 견과류를 접시에 담아서 내와야 하는데 봉지째 갖다준 것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조 부사장은 이어 기내 서비스를 지휘하는 사무장을 불러 서비스 매뉴얼 확인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무장이 태블릿 컴퓨터에서 비밀번호를 찾지 못하는 등 당황하자 조 부사장이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지시했다. 이 일로 출발이 11분 가량 지연됐다.

◇전개=언론보도 (11월 8일 오전)
사건이 알려진 것은 11월 8일 사건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다. 대한항공 측은 “사무장이 내린 것은 기장에서 상황을 보고한 후 기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부사장의 갑질'이라는 네티즌들의 비난은 거셌다. 조 부사장이 25세에 대한항공에 입사해 7년 만인 31세에 임원이 된 '재벌가 장녀'라는 점은 비난을 불붙게 했다. '원정출산 논란'도 다시 되살아났다. 조 부사장은 지난해 회사에서 전근 발령을 받는 형식으로 미국 하와이로 갔고 그곳에서 쌍둥이를 출산했다. 지난해 4월 ‘라면상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조 부사장이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글도 화제가 됐다. 조 부사장은 당시 이렇게 적었다. “현장에 있었던 승무원이 겪었을 당혹감과 수치심이 얼마나 컸을지 안타깝다.” 네티즌들은 기사 아래 이 말을 그대로 댓글로 달기도 했다.

세계 유력 언론들도 사건을 신속하게 보도했다. 영국 BBC 방송과 가디언지 등 권위있는 언론들도 이번 사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조현아 부사장이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삼아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지시한 사실과 조현아 부사장의 이력, 그리고 항공기가 인천공항에 11분 늦게 착륙했다는 사실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가디언은 “견과류를 접시에 담지 않은 ‘터무니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조현아 부사장이 해당 승무원에게 고함을 질렀다”며 비꼬는 듯한 기사를 썼다. AFP통신도 “조현아 부사장의 행동은 완전히 잘못됐다”고 말한 한 국토교통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 사건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독일 DPA 통신 역시 “대한항공 회장의 딸, 승무원을 내리게 하다”는 제목으로 소식을 전했다. 스페인 언론 라 반구아디아(La vanguardia),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Le Figaro),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도 조현아 부사장 사건을 일제히 보도했다.

◇심화=처벌 가능성(11월 8일 낮)
'논란'으로 그치지 않았다. 조 부사장에 대한 '처벌'도 언급됐다. 항공법에 따르면 항공기 승무원에 대한 기내 지휘ㆍ감독은 기장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조 부사장이 대한항공의 기내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지만, 이번 조치는 월권이라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당시 상황은 탑승구에 세워져 있던 비행기를 ‘토잉카(비행기를 밀어주는 차량)’를 이용해 활주로로 이동하는 과정(‘푸시 백’)에서 벌어졌다.

대한항공 측은 “기내에서 승무원에 대한 지휘ㆍ감독은 기장의 역할이 맞다”며 “조 부사장이 기장과 협의해 (사무장이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부사장이 잘못된 응대에 대해 지적을 했고, 이 과정에서 고성이나 고함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 측은 8일 “당시 조 부사장을 태운 항공기 기장은 ‘객실 내 문제가 생겨 (본인이) 책임지고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사무장의 보고를 받고 미국 뉴욕 JFK공항 관제탑에 ‘객실 관련 사항으로 리턴하겠다’고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기장이 정확한 이유를 모른채 조치를 내렸다는 얘기다. 이게 사실이라면 기장의 책임 쪽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5년 경력의 한 항공기 조종사는 “승객 250명을 태운 항공기 기장이 구체적인 배경조차 확인하지 않고 승무원 한 명을 내리기 위해 리턴을 결정했다면 판단 실수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부사장의 개인적인 지시에 따른 조치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객실에서 발생한 사건의 배경을 알고도 승무원을 내리게 했다면 기장의 판단에 조 부사장의 위력이 작용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승객이었던 조 부사장이 비행기의 방향을 틀게 했다면 항로변경죄나 안전운행저행죄 등을 적용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 부사장이 임원의 지위를 이용해 비행기 방향을 틀었다면 이는 사실상 ‘협박에 의한 기기 조작’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공식 사과문' (11월 8일 저녁)
대한항공은 8일 밤 9시경 조현아 부사장의 지시에 따라 공식 사과문을 냈다. 뉴욕발 서울행 항공기의 출발이 지연된 것에 대해 “승객에게 불편을 끼쳐 사과한다”고 했다.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승무원을 하기 시킨 것은 지나친 행동”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사과문은 “사무장이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으며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다”며 해당 사무장의 잘못을 묘사하는 데에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또 조 부사장의 행동에 대해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 제기 및 지적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결론은 “이번 일을 계기로 승무원 교육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사과문은 사건을 도리어 키웠다. 네티즌들은 ‘승무원이 아니라 부사장 교육을 해야 한다’, ‘사과같지 않다’며 더 거세게 비판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 사과문을 담은 기사를 링크하며 “기가 막혀서…여기가 북조선인가”라는 멘션을 달았다.

◇진화…될까? = 노조 성명, 사퇴, 고발(11월 9일)
9일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회사는 조 부사장의 중대한 과실을 덮으려고 승무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책임은 부사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탑승구로 돌아가야 한다’고 기장이 (관제탑에) 보고하게 만든 조 부사장이 져야 한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이날 “조 부사장은 승무원과 승객에 사과하고 사퇴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사실관계에 기초해 법과 규정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할 것"이라며 "필요하면 엄정하게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행 항공보안법에 따르면 부당한 압력으로 운항 중인 항공기 경로를 변경한 사람은 1~10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국토부는 2~3일 내로 조 부사장의 행동과 대한항공의 조치에 대한 조사와 관련법 위반 여부 검토를 마칠 예정이다.

참여연대는 10일 조 부사장을 항공법과 항공보안법, 업무방해 및 강요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할 계획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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