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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자 축소명분 여야모두 세입에 신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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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는 사상처음 여야만장일치로 정부가 정한 세금을 더 올리는 세법을 탄생시켰다. 이것이 과연 장부의 비현실적인 세법편성을 바로잡아 건전 재정의 구현으로 나타날지, 아니면 국민의 세부담을 덜어주어야 할 국회가 스스로 본령에 오점을 남기는 결과만 남길지는 시간을 두고 볼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5천5백억원의 재정적자를 각오하면서 세금을 대폭 내렸고 뒤늦게 여당이 적자를 줄이겠다고 발벗고 나선 것이나, 야당이 심의과정에서의 반대주장을 소리 없이 감추어 버린 것, 이 모두가 새로운 의정패턴이라는 점에서 깊이 분석되어야할 것 같다. 민정당은 제반 경제여건을 볼 때 정부가 내린 세금을 그대로 두는 것이 국민에 대한 일시적 선심은 될지 몰라도 재정의 불 건전성을 심화시켜 종국에는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인식 위에서 심의에 임했다. 때문에 민정당의 목표는 욕을 먹더라도 세금을 올릴 수 있는데 까지 올려 국채발행규모를 줄이자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민정당은 실명제에 이어 정부의 이상론 적 발상을 또 한번 현실로 끌어내린 셈이다. 실명제가 지하경제의 지상유도 보다는 경제불안을 가중시키는 역효를 더 낳을 것이라는 안목으로 보면 민정당의 이번 노력은 국회의 기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정당은 심의를 모두 이 틀에 맞추느라 스스로 융통성을 잃은 면이 많이 눈에 뛴다.
우선 국채와 세입증대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인색했고, 야당에 협상의 틈을 주지 않은 채 자당안을 밀어붙였다.
소득세에서의 야당의 주장대로 2백18억원을 깎아주었으나 8백6억원을 올린 법인세는 손도 못대게했고, 부가세법개정안 통과보류로 발생한 3백56억원의 세수증대로 야당의 생색마저 퇴색하게 만들었다.
세법이 정치적 산물이라면 민정당은 일방적인 세법, 일방적인 정치를 한 셈이다.
세수증대에 집착한 나머지 세부담의 역진성·불공평성 등 문제가 심각함을 민정당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부가세법개정안을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외면해 버렸고 법인세인하를 전제로 조정된 지상배당과세완화, 배당세액공제를 하향조정 등을 정부안대로 통과시긴 것도 세법체계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수차에 걸친 당정협의과정이 있었는데도 문제점을 사전에 제거하지 못하고 국회에 와서 정부와의 갈등을 표면화시킨 것은 민정당이 깊이 반성해야할 허점이었다. 예산의 적자폭을 줄여야 했다면 당정협의과정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조정을 했어야 했는데도 뒤늦게 국회심의과정에서 국회가 세율을 올린다는 전무한 방법으로 대처한 것은 변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적자폭 축소를 위한 세수증대에만 급급한 나머지 중·저 근로소득 층에 대한 세제상의 배려에 지나치게 인색했던 것도 문제였다.
정부가 워낙 앞질러 세율을 크게 내렸고, 민정당의 방벽이 완강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민한당의 세법심의도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한당은 기본적으로 나라살림을 심의하면서 세수의 증감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받았다. 민한당의 대안은 대부분 정부안의 수치를 단순히 낮추거나 높여놓은 것에 불과했다.
이를테면 정부안 20%를l5%로 하고, 정부가 많이 내리자고 한 것은 현행대로 두자고 하고, 정부가 조세감면을 해주자고 하면 하지 말자고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무려 1조2천억원의 세수결함을 주장하는 격이 되었다.
협상과정도 이론과 설득을 배제한「흥정」색이 짙었다. 1만원 올리는데 7백20억원의 세수감이 나는 소득세 인적공제액을 5만원 올리자고 했다가 1만원이 사수 선이라고 하더니, 그것마저도 슬그머니 포기했다.
또 l%인하에 2천5백억원의 세수감이 나는 부가세율을 3% 내리자고 했다가 결국 민정당 주장대로 보류시키게 됐다.
조감법 개정안을 당안으로 내어놓고『개인 안이다, 아니다』면서 자중지란을 벌이다가 끝내 유혈극으로 간 것은 변명할 여지없는 추태였다.
또 서민의 목돈마련과 직결되는 우대특별가계예금의 비과세폐지는 방관하면서 관광요정의 특소세면제에 앞장선 것은 석연치 않다.
다만 좋게 본 종래의 여야관계를 떠나 재정적자를 줄이는데 여당과 함께 걱정하고 호흡할 수 있었던 점과 저소득층의 세부담 경감을 위해 끝까지 소득세세율구조·세액공제·근로소득범위조정에 당력을 쏟은 점이 지적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나마「세입증대」라는 우산에 가려져 버리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국회 세법심의의「모양」을 그르치고 여야 모두에 부담을 안겨준 것은 정부의 턱없는 세율인하에 기인하는바 크다.
실명제를 전제로「저세율·소감면」정책을 지향한 정부안은 실명제가 연기됨으로써 발생 자체가「과욕」으로 변색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재무부 측이『정부의 체면을 세워달라』며 법인세를 8% 올리려는 민정당에 마지막까지 제동을 건 것은 재정확보를 제1의 임무로 여겨야할 국고 부서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아뭏든 정부와 민정당은 피차의 상반된 의지를 모자이크 식으로 조립한 내년도 세법이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를 겸허한 자세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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