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헌수와 뇌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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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직자들에겐 국가발전을 주도하는 사명이 부여돼 있어 공직자 자신들의 긍지는 물론 국민들의 신뢰 또한 높다. 특히 재5공화국에선「깨끗한 정부」의 모토아래 공직자들의 조그마한 부조리조차 용납 안 하는 정화시책이 그동안 활발히 추진돼왔다.
그러나 요즘 들어 간간이 드러나는 공직자들의 부조리는 이 같은 국민의 기대에 깊은 실망을 안겨주는 부정적 요소를 담고 있어 적이 우려된다.
최근 서울시내 어느 구청의 청장과 관계직원들이 시민헌수기금으로 벌인 도시 녹화사업을 둘러싸고 업자로부터 몇 백만 원씩의 뇌물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내 곳곳의 지하철공사장에선 일단의 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상납금을 받아왔다. 바로 지하철 공사장을 무슨 꿀단지쯤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이들은 모두 당국의 단호한 조처로 응분의 처벌을 받았거나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 당국이 이들의 비위를 감추지 않고 과감한 조치를 취한 것은 그만큼 부조리추방의 결의가 단단함을 다시 한번 국민 앞에 보여주는 것 같다.
왜 공직자들의 부조리가 일소돼야 하는가에 대해선 귀가 아프게 논의가 있어왔다. 밝은 사회를 건설함에 있어 공직자들이 솔선 수범해야 되는 당위성도 충분히 인식이 돼왔다.
나라의 기강은 공직자들이 먼저 바로잡으려고 노력할 때 바로잡히는 것이지 국민들의 비뚤어진 의식만을 탓할 수는 없다. 공직자에겐 남들의 모범이 되는 생활을 누려야할 의무가 있으며 국민의 지탄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과오를 시정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의무를 소홀히 하고 용기를 내야할 때 주저하는 사람에겐 공직자의 명예를 박탈함이 마땅하다.
공직자의 의무와 용기를 저버린 사람들이 비단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뿐일까. 아마도 많은 공직자들은 깨끗한 정부를 건설한다는 대의 앞에 아직도 자신의 의식과 행동이 뒤쫓아가지 못함을 자괴하고 있으리라. 물론 부조리 추방운동이 하루아침에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오늘 고쳐야할 일을 고치지 않고 미루면 이 국정지표는 영원한 거북이 걸음일 뿐이다.
공직자의 부조리사전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그 원인을 다시 한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밝은 사회」,「깨끗한 정부」로 가는 발걸음에 다소간의 흐트러짐이 있지 않았나 반성해야 하고 한 때 열화 같았던 그 의지가 수그러들지 않았나 살펴야한다.
또한 공직자들의 사명감과 용기를 북돋는 근본방안은 적절히 수립돼 있으며 그것이 제대로 실천되고있는지 실질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내건 목표가 추상적인 이상이라면 이것에 접근하는 정책은 매우 실질적으로 나타나야 그 이상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본다.
공직자들의 사명감과 용기는 결코 국민을 명령하고 규제하는데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목표다. 그것은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국민들의 의사를 잘 살펴 국민들과 화합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과연 공직자들이 국민과의 일체감속에서 어떻게 스스로 사기를 높일 수 있을지, 그 관건은 정부가 쥐고 있다. 조그만 부조리사건을 거울삼아 자신의 위치를 자성해 보는 것이 오늘의 공직자의 도리이며 정부의 슬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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