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군용기로 돈 번 이영개의 컬렉션, 일본 제과 가문이 인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 최초의 수도이자 8세기 일본 초기불교의 본산인 1300년 고도(古都) 나라(奈良). 이 도시 한복판엔 불교 전통과는 사뭇 다른 르네상스식 서양 건물이 세워져 있다. 샛노란 벽이 인상적인 나라국립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불교예술로 특히 유명하다. 그랬기에 이곳 수장고에 조선시대의 걸작들이 잠자고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영개가 수집한 귀중한 컬렉션 109점이 소장돼 있다는 제보에 따라 나라국립박물관을 방문한 것은 지난 9월 말이었다. 제보자에 따르면 현 소유자는 이영개 컬렉션을 박물관에 위탁하면서 보관증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박물관 소속 학예사에게 이영개 컬렉션의 존재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담당 분야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며 “e메일로 다시 문의하면 조사해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 후 e메일로 재차 질의하자 나라국립박물관 측은 “개인들이 위탁한 문화재에 대해서는 일절 알려주지 않는 게 박물관의 원칙”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왜장 가메이가 약탈해 간 `조선 임금 깃발` 왜장 가메이 고레노리가 임진왜란 때 약탈해 간 것으로 알려진 ‘조선왕진기(朝鮮王陣旗)’. .왕진기.는 임금이 전투에 나갈 때 자신의 진지에 꽂아두는 깃발이다. 현재 돗토리현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영개 컬렉션’으로 불리는 이 문화재는 이영개가 일제 및 해방 후 수집한 미술품으로 그가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 비행기를 제작해 일본에 납품했던 이영개는 사업가뿐 아니라 미술상으로도 이름을 날린다. 그는 일제 때부터 한국의 문화재를 다수 일본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아왔다. 의혹의 실체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 문화재들은 이영개가 숨진 뒤 그의 유족들이 소유하다 일본의 한 제과업체 대표 가문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 가문에서 이영개 컬렉션을 소장하다 도난 위험 등 보관상의 어려움으로 나라국립박물관에 맡긴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박물관에서는 개인 소유 문화재를 위탁보관해 주는 경우가 많다. 나라국립박물관의 경우 자체 소장품은 1862점에 불과한 반면 위탁품은 이보다 더 많은 1994점에 달한다.

 한편 이영개는 1976년 일본에서 『조선고서화 총람』이라는 조선시대 그림과 글씨를 수록한 도록을 발간한 바 있다. 이 일본어판 도록에는 한석봉·김홍도·장승업·이하응·오세창 등 조선시대 최고 명장의 서화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나라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인 이영개 컬렉션에는 이 도록에 수록된 작품 중 상당수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록에 나온 작품 중 한석봉의 글씨와 함께 조선시대 걸작으로 꼽히는 일호 남계우의 나비 그림, 대원군 이하응의 난초 그림, 석연 양기훈의 기러기 그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고미술 전문가인 이원복 경기도박물관장은 8일 “이영개가 조선시대 서화를 취급했다는 건 알려져 있지만 이 정도의 컬렉션이 나라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이날 “박물관 수장고 내에 얼마나 많은 유물이 보관돼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화 및 불상 등은 도난당한 것이 적지 않지만 조선시대 서화는 제대로 거래된 경우가 많아 이영개 컬렉션을 불법 유출됐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가능하다면 구입 등 정당한 방법으로 되찾아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영개 컬렉션으로 추정되는 작품 도록을 본 최 교수는 “가짜가 많은 한석봉의 글씨는 진위를 가려야겠지만 남계우의 나비 그림은 매우 뛰어나며 대원군의 난초도 훌륭해 보인다”고 평했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김정희·안평대군 등과 함께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꼽히는 석봉 한호의 글씨. 명나라의 명필 주지향(朱之香)은 그를 두고 “중국 최고의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안진경(顔眞卿)과도 우열을 가리기가 매우 어렵다”고 칭찬했다.
조선시대 나비 그림의 1인자인 남계우의 ‘화접묘도(花蝶猫圖·왼쪽)’와 난 그림으로 유명했던 흥선대원군의 ‘묵란도(墨蘭圖)’.

친일 기업인 이영개는 누구
대동아공영권 선전 … 반민특위에 체포됐다 풀려나

이영개는 일제 때 군용기를 만들어 납품했던 대표적인 친일 기업가다. 1906년 경남에서 태어난 그는 1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간 뒤 현지에서 말단 관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34년 사업가로 변신, 승승장구하다 귀국해 38년부터 송도항공기 이사로 일하면서 비행기와 인연을 맺는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44년엔 군용기 제작업체인 금강항공공업의 사장으로 재직하다 해방을 맞게 된다. 그는 대동아공영권 선전에 앞장선 동양협화회 회장 및 황민실천협의회의 정치국원으로도 활약했다. 해방 후에는 반민특위에 체포돼 특별검찰부에 송치됐으나 곧 풀려났다. 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곧바로 일본으로 탈출해 생활하다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망 시점은 확실치 않다. 이영개는 미술상으로도 유명했는데 일제 때 일본으로 수많은 문화재를 유출했을 것으로 의심받아 왔다. 그는 또 다른 친일파인 윤우경 구황실재산총국 국장과 결탁, 덕수궁 미술관이 소장해 왔던 일본 유명 화가의 작품 5점을 일본으로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한편 그는 일본 해군의 명장 도고 헤이하치로와 가까웠다고 한다. 자신을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유한 칭찬에 도고가 “이순신에 비하면 나는 하사관 수준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도 이영개가 듣고 전한 것으로 돼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