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능통한 전 KGB총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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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스크바UPI=연합】갑자기 사망한 소련지도자 「브레즈네프」의 후계자로 매우 유력시 되고있는 전 국가보안위원회(KGB=비밀경찰) 위원장 「유리·블라디미로비치·안드로포프」(68)는 과거 「브레즈네프」와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영어에 능통한 그는 1m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반듯이 빗어 넘긴 회색머리, 그리고 최신식 무테안경을 끼어 어느 리셉션에서 든 사람의 눈길을 끄는 도회풍의 인물로서 정치인이 아니라 교수인 것처럼 보인다.
차분하고 신중하면서도 약간은 냉정하게 말하는 폼은 바로 전형적인 외교관의 그것이다.
「브레즈네프」와 한 아파트에 살면서 권좌에 근접할 수 있는 무상의 기회를 잡았던 「안드로포프」는 지난 67년 KGB의 총수가 될 때까지 당 관료와 일선의 교관으로 일했었다.
그는 67년 6월 정치국원으로 뽑혀 지난 53년 처형된 「라브렌티·P·베리야」 이후 KGB총책과 정치국원을 겸직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그가 KGB위원장직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과 KGB위원장 및 정치국원을 정하고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광범한 분야에서 얼마나 능란한 솜씨를 발휘했는가하는 점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그는 82년5월24일 당 서기가 됨으로써 「브레즈네프」의 유력한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1914년6월15일 흑해와 카스피해의 중간에 있는 스타브로폴 크라이의 철로변 마을에서 태어난 「안드로포프」는 소련 현대사의 추악한 측면을 보여주는 사건을 이용,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그의 첫 번째 벼락출세는 제2차 세계대전전 「스탈린」에 의해 만행된 대숙청으로 공산당지도부에 많은 공백이 생겼을 때 이루어졌다.
당시·23세의 청년으로 리빈스크의 한 조선소에서 공산주의청년동맹 조직 중이던 「안드로포프」는 현기증이 날만큼 빠른 속도로 승진을 거듭했다.
56년의 헝가리 폭동 때 그는 두 번째 벼락출세의 기회를 잡았다.
부다페스트주재 소련대사였던 그는 본국정부의 명령을 강력히 실천에 옮겨 폭동을 성공적으로 봉쇄, 그 보상으로 고위직에 올랐다.
한때 「브레즈네프」도 살았었던 아파트건물의 방 둘 짜리 집에는 피아노·스테레오전축·TV세트·홈바 등이 놓여있고 선반은 영어판을 포함, 많은 서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가구는 모두 외국제로 그중 일부는 헝가리 정부가 56년의 폭동을 진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는 경호원들과 함께 KGB소속의 승용차로 제2 제르진스키광장에 있는 KGB본부로 출근한다.
그의 사무실은 마르크스가가 내려다보이는 KGB본부 3층에 있으며 널따란 책상 위에는 크렘린궁과의·직통전화, 소련의 다른 공화국 및 동구국가에 있는 KGB지부와 고주파회선으로 연결되는 전화 등이 가득 놓여있다.
그는 「브레즈네프」에게 직접 업무보고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 하안함대대학을 수료하기 전 전신기술병 및 영화기계병으로 복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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