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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중앙신인문학상 심사위원 권여선 작가의 축사

중앙일보

입력

여기 중앙신인문학상을 받는 시, 소설, 평론, 세 분의 당선자가 있습니다.

얼마나 떨리겠습니까? 이건 세 분이 아니라 제 얘기입니다. 처음에 저는 신인문학상 축사를 해달라기에 제가 심사에 참여했던 소설 부문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 평론까지 묶어서 해달라는 겁니다. 시와 평론을 심사한 사람 중에 저보다 더 어리고 만만한 심사위원이 한 명도 없었단 말입니까. 저는 분노에 떨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떨립니다. 어쨌든 저는 축사를 위해 세 분의 당선작을 다시 읽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말하는 일보다 쓰고 읽는 일에 능하니. 이제 써온 것을 읽겠습니다.

우선 소설에 당선된 정희선 소설가의 '쏘아올리다'는 심사할 때도 느꼈던 것처럼 안정되어 있어서 아슬아슬한 작품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1그램만 기울어도 망가질, 정교하고 능란한 균형이었습니다. 이런 균형감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정희선 소설가는 지금부터 진정 자기 길을 찾아야 할 기로에 서 있습니다.

시에 당선된 유이우 시인의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는 일견 김수영을 떠올리게 합니다. 세로로 가로로 가까이로 멀리로 우아하게 종횡무진하는 자유의 자세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말랑한 김수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젊고 명료한 감각이 더 치열하게 벼려지기를 바랍니다.

평론에 당선된 김유석 평론가의 ‘청년 영매의 소설되기’의 치명적 결함은 제가 아니라 김사과 소설가를 다뤘다는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김사과의 소설이 ‘쓰기’가 아니라 ‘되기’임을 작가가 스스로 현실의 징후가 됨으로써 현실 연관성을 확보한다는 논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작품마다 다른 문제 설정과 그에 따른 김사과의 독특한 미적 전략, 문체의 변화 등도 좀 더 살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축하를 해야 할 자리에서 제가 다소 뜬금없는 비판적 사족을 다는 이유는, 축사를 떠맡은 게 분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여기 세 당선자가 이제 우리의 동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심사하고 심사받는 관계도 아니고, 중견과 신인의 관계도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작품을 쓸 때는 누구나 신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앞으로 우리는 숨어서 남몰래 매의 눈으로 서로의 작품을 읽는, 영원한 신인으로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 명의 동료가 우리 곁에 와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질투와 절망, 오기와 열정을 자극할, 멋진 글을 쓰는 동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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