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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의 양적완화 성적표, 왜 이리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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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로 시중에 푼 돈은 3조6000억 달러(약 4010조원)다. 내년도 한국의 세출예산(375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10배가 넘는 돈을 시장에 공급했다. 2013년 4월부터 양적완화를 시작한 일본은행도 지금껏 127조 엔(약 1178조원)을 풀었다. 두 나라 중앙은행은 천문학적인 돈을 시장으로 흘려보냈다. 결과는? 현 시점에서는 완전 딴판이다.

 Fed는 지난 10월 말로 양적완화를 종료했다. 미국 경제는 2분기에 4.6%(연율 기준), 3분기에 3.9% 성장했다. 일본은행은 Fed의 발표 이틀 후에 거꾸로 갔다. 연간 60~70조 엔이던 양적완화 규모를 80조 엔으로 확대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2분기에 -7.3%, 3분기에 -1.6%였다.

 미국의 돈 펌프와 일본의 돈 펌프가 다를 리 없다. 똑같이 보일러로 따뜻한 물을 공급했다. 한쪽의 아랫목은 따뜻해졌다. 반면 다른 쪽 방바닥은 더 차가워졌다. 이유는 뭘까.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됐을 것이다. 유가하락으로 미국 가계의 지갑에 여유가 생겨 소비가 늘었다는 분석이 있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한다. 돈 씀씀이가 늘어나니 일자리도 생기면서 경제에 활력이 돈다는 설명이다. 맞는 분석이지만 이게 왜 미국에서만 그러냐는 의문이다. 기름값이 싸진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일본의 총 개인소비는 지난 2년간 1조 엔(307조 엔→306조 엔) 줄었다. 일본도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나 되는 나라다.

 두 나라의 차이를 만든 핵심은 분명하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규제완화가 이루어진 미국 경제에는 새살이 돋고 있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급습한 이래 미국에서는 2년 만에 800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갔다. 압류된 집만 400만 채였다. 한계 선상에 놓인 기업이 대부분 정리된 건 물론이다.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 일본에는 금융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들이 널려 있다.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 교수는 “은행들이 부실 기업을 계속 도와줘 구조조정이 안 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일본은행이 돈을 아무리 풀어도 쓸모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는 얘기다. 경제에 새살이 돋을 수 없는 구조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에는 발등의 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좀비 기업은 국내 전체 기업의 15%를 넘었다. 특히 건설업은 41%, 조선업 등 운송장비업은 26%나 된다. 이들의 퇴출이 지연되면서 건강한 기업의 투자와 고용도 막고 있다. 이건 공멸로 가는 길이다. 구조조정, 고통스러울 거다. 그래도 회피해선 안 된다. 모두가 살기 위해 그 길을 가야 한다.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