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옛 서민의 소리 10년 노력 끝에 되살렸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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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어버이에 대한 효심을 노래한 '회심곡'으로 폭넓은 인기를 누려온 김영임(52) 명창이 이번에는 '경기 12잡가'에 도전한다.

올해로 소리에 입문한 지 33년째인 김씨는 "그간 소리꾼으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큰 무대에도 설 만큼 서 봤는데, 나이가 들며 명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일을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판소리 못지않게 매력 있는 경기잡가를 대중에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는 것이다.

12잡가는 경기 소리의 한 종류로 '적벽가' '소춘향가' '제비가' 등 12곡으로 이뤄져 있다. 조선 후기에 서울 근교 서민층이 즐겨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 소리꾼들이 명맥만 이어갈 뿐이다.

김씨는 1995년부터 경기 잡가 무형문화재인 묵계월 선생 문하에서 12잡가를 배웠다. 그렇게 10년 동안 가다듬은 소리를 담은 완창 음반을 최근 냈다. 28일엔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국악평론가 한명희씨의 해설을 곁들인 완창 발표회도 연다.

"한자리에 앉아 내리 세 시간 이상 소리를 해야 해요. 가사를 외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죠. 솔직히 완창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무대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최선을 다하려고요."

전화 신청을 받아 무료로 초대하는 이 공연의 좌석(300석)은 일찌감치 동났다.

"원래 12잡가는 서민이 농한기에 움집에 모여 불렀대요. 그래서 넓은 공간에서 부르는 판소리와 대비돼 실내악에 비유되곤 하지요.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일부러 작은 공연장을 잡았습니다."

김씨는 앞으론 아무리 바빠도 1년에 한 번씩은 소규모의 무료 공연 무대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민요가 뭡니까. 그 시대의 대중이 즐길 수 있는 노래잖아요. 창작 민요도 만들고 12잡가처럼 묻혀진 소리도 발굴하고…. 소리꾼의 소임을 다하려고요."

김씨는 서울국악예고를 졸업한 직후인 21세 때 선배의 대타로 국악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국악계에 데뷔했다. 이듬해 음반사의 제의로 '회심곡'을 처음 불렀다. '부모님께 효도하며 착하게 살다 착하게 가라'는 메시지를 구슬픈 가락에 실은 이 소리는 이후 김씨의 대표곡이 됐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리꾼이 된 것, 결혼(그의 남편은 코미디언 이상해씨다)을 감행한 것, 시어머님께 잘못한 것 등 그간 저지른 온갖 불효가 떠올라 눈물이 저절로 나요."

김씨는 "소리를 통해 깍쟁이 막내딸이 조금씩 사람이 돼가니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기뻐하시겠지요"라며 살포시 웃었다.

그는 94년부터 해마다 어버이날과 명절이면 전국을 돌며 '회심곡' 공연을 하느라 분주했다. 지금까지 180회 공연에 관객 20만 명을 만났다. 다음달 25일에도 경기도 고양어울림극장에서 '회심곡'을 부를 예정이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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