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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직접정치 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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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가장 늘어난 것이 언론과의 접촉이다. 그 대상이 청와대 출입기자만이 아니다. 신문.방송의 제작 간부들을 직접 만나고 있다.

23일에는 지방 언론사 편집국장 간담회를 열었다. 이에 앞서 중앙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7월 8일), 중앙 언론사 정치부장단 간담회(8월 18일)를 열었다.

25일엔 KBS '100분 토론'에 출연한다. 프로그램 제목은 '국민과의 대화'다. 여기에서 노 대통령의 후반 임기로 들어가는 소감과 국정 운영 계획을 밝힐 방침이다. 하루 전인 24일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비공개 오찬 간담회를 연다.

노 대통령은 일련의 언론 접촉에서 대연정, 과거사청산, 도청문제 같은 굵직한 정치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다. 29일의 간담회에선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 8일엔 불법 도청 테이프의 공개를 위한 특별법 도입을 제안했다. 이들 이슈는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노 대통령은 '서신 정치'도 병행하고 있다. '당원 동지들에게 보내는 글'이란 형식으로 야당이 낸 국방부 장관 해임 건의안에 반대하는 내용과 대연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편지를 띄운 적이 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기회가 닿는 대로 언론을 비롯, 여론 주도층들에 대통령이 직접 말하는 자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국민을 상대로 직접 설득하고 대화하는 통치 스타일은 노 대통령의 장기다. 참여정부 출범 초에도 그는 평검사와의 대화, 공무원과의 대화 등을 주도하면서 소수 여당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한때 노 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자제한 적도 있다.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다음이다. 내각의 업무도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대폭 위임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재.보궐 선거에서 여소야대로 바뀌자 다시 입을 여는 모양새다.

그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노 대통령 자신은 23일 "하반기에는 연정 추진에 집중할 것"이라며 "선거구제 개편을 포함해 지역구도 극복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자신의 생각을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 대화 정치의 목적인 것 같다. "언론과의 생산적 경쟁관계를 고려해 비서실장을 선임할 계획"이라는 설명도 했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막힌 길일수록 돌아가기보다는 직접 부닥쳐 돌파하는 게 노 대통령 스타일"이라며 "노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 들면서 개혁 과제 수행과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직접 국민을 설득하고 호소해 나가야겠다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완충지대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경우 국정의 표류와 여야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야당에선 "여과되지 않은 발언으로 문제를 불렀던 노 대통령이 또다시 직접 대화 형식으로 전면에 나서려는 것은 대충돌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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